같이 한번 살자꾸나 / 반벙어리 너랑 / 곱사등이 나랑
같이 한번 살자꾸나 / 붙일 데 없는 너랑 / 얹힌 데 없는 나랑
같이 한번 살자꾸나 / 다리 저는 너랑 / 만기 출옥 나랑
같이 한번 살자꾸나 / 십 년 문둥이 니캉 / 오 년 문둥이 내캉
이승하(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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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
바닥을 보였을 때, 가장 큰 용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갈 데까지 가본 사람들의 바닥은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어쩌면 이곳은 ‘없음’의 완전한 지대이며, ‘비어 있음’의 온전한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만난 사랑은 어떠한가. ‘반벙어리와 곱사등’ ‘오갈 데 없는 자와 맞아 줄 사람 없는 자’ ‘장애인과 범죄자’ ‘장기 문둥이’와 ‘단기 문둥이’ 등은 서로 낫고 못함이 없는 같은 처지인 ‘피장파장’을 실체화한 것이며, 거기서 거기라는 ‘도찐개찐(도긴개긴)’을 형상화한 것이다. 피장파장의 완전한 지대에서 혹은 도찐개찐의 온전한 장소에서 “같이 한번 살자꾸나” 없음의 비어―있음으로 구혼하는, 이 말은 끝까지 가본 자만이 낼 수 있는, 이른바 바닥에서 출현한 ‘충만한 언어’가 된다.
/권성훈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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