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인천서 가장 오래된 서점’ 대한서림 김순배 대표

죄 짓는 것 같아 마음돌려… 시민 관심이 폐점 막았다

이영재 기자

발행일 2015-06-1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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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업 결정을 철회한 후 요즘은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서점에 머물며 일을 한다”는 대한서림 김순배(71) 대표가 서점 책 속에 묻혀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폐점결정 번복 이유 / 시민들에 하고 싶은 말
보도 후 만류전화 빗발 애정어린 여론에 놀라
잊혀졌다는 생각은 오판… ‘다시 해보자’ 다짐
정치적 외도 탓 자책감 들어 부끄럽고 감사해

■대한서림만의 힘과 동네책방이 가야할 길은?
전국 첫 재고관리 전산화 등 혁신경영으로 버텨
백화점식 판매 더이상 안돼 분야별 전문화 필요
유아·아동용 직접 고르는 경향있어 경쟁력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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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듭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한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김순배(71) 대표가 건넨 명함을 들여다 보니 이런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방 주인임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상투적인 어구 같아 보였지만, 생각해보니 요즘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얻는 세상 속에서 이런 투박한 글귀가 적혀 있는 책방 주인의 명함을 받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박한 그의 오래된 명함처럼 1953년 인천 중구에 문을 연 대한서림은 지난 62년간 인천 사람들의 곁을 지켜왔다. 1980~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한서림 앞에서 만나자”란 말이 통용됐을 정도로 이 서점은 인천의 랜드마크로, 시민들이 언제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큰 역할을 했다.

마을 어귀의 고목 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대한서림의 폐점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3월이다. 6층짜리 대한서림 건물 한 가운데 ‘3·4·5층 임대’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리고 책방의 폐점 임박을 알리는 경인일보 보도가 나간 후 인천의 가장 오래된 서점, 대한서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대한서림의 기적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됐다. “대한서림 이대론 못 보내….” 경인일보를 통해 대한서림의 안타까운 폐점 소식이 알려지자 인천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대한서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중·장년층부터 서점 인근의 학생들까지 대한서림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서점에는 폐점을 만류하는 전화가 매일 수백 통씩 걸려왔고, 직접 김 대표를 찾아와 뜻을 접어달라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진 것만 같던 대한서림의 존재는 여전히 건재했고, 김순배 대표는 이런 인천 시민의 관심을 자양분 삼아 폐업 결정을 접고 다시 서점을 되살려 보겠다고 나섰다.

지난 15일 오후 중구 인현동에 있는 대한서림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폐점 결정을 번복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1~2년 고민해서 폐점을 결정한 게 아니었다. 1998년 IMF 이후 서점업계가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고 인터넷 책 배송 시스템과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된 이후부터 서점은 그야말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53년 개업한 대한서림을 1978년에 장인 어른으로부터 물려 받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운영해 왔다. 평생을 바친 서점이고 인천 시민의 자산이나 다름없는 이런 대한서림 폐점 결정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솔직히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서점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겠다는 유혹(?)도 여러 번 받았다. 임대 수익과 서점 매출을 비교해 봐도 수익 측면에서는 임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가족들도 서점을 접고 이제는 편히 쉬라는 권유를 해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런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인천 시민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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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폐점 보도 이후 서점을 살리자는 지역 사회 반응이 컸다.

“나도 놀랐다. 보도 이후 일을 못할 정도로 많은 전화를 받았다. 시민들이 대한서림의 존재를 잊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오판이었다. 서울 외지에 사는 동창생은 물론 서점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 대한서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중·장년층까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나를 설득하는데 마치 죄를 지은 것 같고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솔직히 인천시민들이 이렇게까지 대한서림을 기억하고 사랑해 주는 지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고 잊고 있었다. 이미 폐업 결정을 내린 상태였는데 이런 걸 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잠 설치며 수일을 고민한 끝에 다시 한번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서점이 전 세계적으로 워낙 사양 업종이라 큰 자신감은 없었지만 시민들의 이런 관심이라면 해 볼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시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대한서림이 지금까지 버텨온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1978년 서점을 물려받았을 때부터 내 서점 경영 철학은 ‘최소의 재고량으로 최고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왔다. 내가 서점을 물려받기 전 일반 회사에서 자재관리 업무를 담당했었다. 재고 관리에는 자신이 있었다. 책 재고 목록을 카드로 만든 뒤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그리고 1980년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런 재고 시스템을 전산화 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도였는데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전산화된 책 재고 시스템을 도입한 서점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런 혁신적인 경영관리 시스템으로 서점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그 동안 잘 버틸 수 있었다. 여기에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까지 더해져 우리 서점은 서울에 있는 어느 서점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대한서림도 비슷하겠지만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과거처럼 동네 서점들이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의 서적을 판매하는 것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한 분야로 전문화 특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서점을 다시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유아·아동용 서적 중심으로 서점을 개편하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 서점 4층은 아동·유아용으로만 채워졌다. 인터넷 배송 서비스 등이 발달돼 있지만 아직까지 아동용 도서는 부모들이 서점에 와 직접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도 역사 서적 하면 떠오르는 책방이 있고 문화 관련 책을 사고 싶으면 꼭 가야 할 서점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특화시켜 나아가야지 그나마 동네서점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마음 가짐이다. 책을 가까이 하겠다는 문화적 욕구가 있어야 서점에 올 것 아닌가. 요즘처럼 인터넷만 뒤지면 모든 정보가 나오는 세상에서 동네 서점이 살아 남기가 참 힘든 게 현실이다.”

-성원을 보내준 인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천 시민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대한서림을 운영하며 7~8년은 서점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시의원과 국회의원 출마로 외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대한서림으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나의 이런 정치적 외도 때문에 서점을 잘 돌보지 못해 대한서림이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폐업 결정을 철회한 후 요즘은 오전 7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서점에 머물며 일을 한다. 가족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우리 서점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을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집에서 놀 수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전환점을 경인일보가 만들어 줬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세상이 인스턴트화 되는 상황에서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서점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어렵게 결정한 만큼 인천 사람들과 지역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김순배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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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15일 출생
▲1961년 인천중학교 졸업
▲1964년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1972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1972~76년 동부제강 근무
▲1977~78년 진흥기업 사우디아라비아 지사 근무
▲1991~95년 인천시의회 의원
▲1996~2000년 인천YMCA 부이사장
▲1978년~현재 대한서림 대표 이사

/대담=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정리=김명호기자 /사진=임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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