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알게 된,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들

김방희

발행일 2015-06-18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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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정부, 신종 전염병 안이한 인식
초기대응 실패·비밀주의 집착
정치권은 삼성서울병원 환자
동선 둘러싸고 편가르기 몰두
이러한 과정 거치는 동안
국민은 불안·공포심 더 커졌다


지난 5월 27일 아침 질병관리본부 담당자의 라디오 인터뷰를 들은 것은 마침 출장을 위해 인천 공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첫 확진 환자가 등장한 지 1주일이 지났고, 그 날까지 5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한 시점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고국을 떠나는 이에게 그의 목소리가 더욱 불길했다. 그는 다섯 번째 의사 환자의 출현을 두고 ‘전파력이 높지 않고, 우연적인 케이스’라고 확언했다. 3년 동안의 역학 사실로, ‘공기전파에 의해서 지역사회까지 전파된 사례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 발언이 심상치 않게 들렸던 이유는 상황 인식 탓이었다. 질병이나 자연재해 등 급변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초기 당국자는 이미 최선의 시나리오만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물론 정부가 이 신종 전염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초 알려진 바로는 메르스가 중동 지역에서 주로 낙타를 통해 옮았다. 더욱이 밀착 접촉이 아닌 단순 대인 접촉으로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병원을 통해 급격하게 확산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는 아예 배제된 듯 보였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 그대로 병원과 의심 혹은 격리 환자들에게 전염됐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은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초기 확진 환자 소재 파악이나 격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의심 환자나 격리 환자들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하고, 대중이 모이는 곳에 들렀다. 다수가 마치 마취된 것처럼 설마 내가 걸렸겠느냐, 그렇게 감염시키겠느냐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사태 초기 정부는 신종 전염병과의 싸움보다는 유언비어와의 전쟁에 더 골몰했다. 그렇게 비밀주의에 매달리는 동안 불안과 공포는 더해 갔다. 결국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정보를 공개하고 나섰다. 그러자 부랴부랴 정부도 메르스 진원지인 병원을 공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지자체 단체장보다 먼저 공개를 지시했다거나 지자체가 각자 대응하고 나서면 더욱 불안해진다는 주장을 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사태 초기 대응 실패를 자인하기 싫어서 하는 ‘비겁한 변명’처럼 들렸다.

물론 신종 전염병과 관련해 비밀과 공개 여부는 정책 판단의 여지가 있다. 나라나 사례별로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중동 지역과는 달리 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더욱이 거의 전 국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는 요즘 이런 부류의 비밀을 지키려야 지킬 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사태 초기의 정부의 대응 실패와 비밀주의 집착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일로 키워버렸다. 2003년 사스 대처 당시와 비교하며 뒤늦게 지적된 컨트롤타워 부재는, 이를 반증하는 목소리였을 따름이다.

더욱 무서운 일은 삼성서울병원 35번 환자의 동선(動線)을 둘러싼 논란에서 비롯된 이념과 진영간 편 가르기다. 서울시장의 정보 공개에 당사자와 보수 언론은 사실관계를 왜곡한 정치적 행보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도 이를 폄훼하기 위해 일제히 움직였다. 당장 신종 전염병과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근절하는 데 무기력했던 주체들은 정치적 판단과 행동에서만 예민하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키웠다. 그렇잖아도 이미 제조업과 수출 부진으로 허약한 체질을 보이는 우리 경제는 이 일로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고질병이 있는 환자에 신종 괴질이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든 한 달 동안 우리는 갑자기 깨닫게 됐다. 정부는 무능하고 국민은 성숙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이 긴급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민은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한참 못났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메르스는 떠나겠지만, 이 무자비한 현실 인식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를까 무섭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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