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독립기념일이 없다

정 양

발행일 2015-06-1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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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일제 왕비시해에 백성분노 응집된 이름 ‘대한민국’
백범선생의 첫째·둘째·셋째도 소원이었던 ‘독립’
명색이 독립국인데 독립은 아직도 어려운 숙제


우리에게 독립은 익숙한 말이다. 독립협회도 독립문도 독립신문도 독립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기원하는 의미의 독립이었거나 그 뒤에 생긴 독립군은 마적패로 몰리면서 일제의 토벌 대상이 되었던 군대였다.

대한제국은 백성들의 헌금으로 독립문을 세우고 우리는 그걸 국보로 삼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개선문적 성격이 짙은 그 독립문은 대한제국과 함께 일제의 감시와 묵인 하에 벌인 조선왕조의 마지막 불꽃놀이였다. 그것들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를 끔찍하게 시해했던 일제가 들끓는 국제적 여론에 몰리어 시혜적으로 베푼 잔치였던 셈이다.

사무라이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왕비를 시해한 사건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 중 으뜸가는 원죄다. 일제는 그 흔적을 지우려고 왕비의 주검을 현장에서 화장해버렸고, 조선왕조는 2년이 넘도록 그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범인을 처벌한 뒤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왕가의 규율 때문이었다. 왕비를 시해한 사무라이들에게는 손도 못 대고 왕비의 주검을 화장할 때 장작더미를 옮겼던 궁인들 세 명을 범인이랍시고 처형했지만 그런 꼼수는 이미 장례의 명분으로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왕비시해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에조(英臟)보고서에는 옷을 벗긴 나신(裸身)의 왕비를 사무라이들이 능욕한 뒤 칼로 찔러 죽이고 화장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제국은 그렇게 시해당한 왕비를 황후로 승격시켜 장례의 명분으로 삼는다. 능욕당하고 화장당한 왕비는 시신도 없는 황후가 되어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 당시의 자객 가쯔이까는 왕비에게 휘둘렀던 칼을 쿠시다 신사에 자랑스럽게 기증했다. 독립을 잃은 식민지의 참극이 어찌 이뿐이었겠는가.

왕비가 시해당한 뒤 대한제국의 친일내각 총리 김홍집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격분한 군중에게 맞아 죽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도 왕비시해사건이 부른 피의 복수였고 황해도 해주의 평범했던 청년 김창수(김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직접적인 이유도 일제의 왕비시해 만행 때문이었다. 백범 선생은 일본군인을 맨주먹으로 타살(打殺)하고 사형을 언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옥하여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한다.

일제의 왕비시해 만행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응집된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백범 선생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 소원이라고 그의 일지에 썼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 연합군의 승전기념일, 우리가 광복절이라고도 하는 그 날이 민족의 광복이나 해방이나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흉탄에 쓰러지기 훨씬 전부터 백범 선생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8월 10일, 그러니까 해방도 되기 전에 미리 38선을 그어 조선의 임시적 분할점령을 소련에 제안하고 소련은 이를 즉시 수락한다. 국토분단과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그 삼팔선은 그러나 임시적 분할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구도에 대비한 미국의 면밀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

한국전쟁 후 삼팔선 대신 휴전선이 생기고 60년 넘도록 우리에게는 아직도 독립기념일이 없다는 것을, 독립은커녕 해방이 되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리 분할점령부터 당했다는 것을, 명색은 독립국이면서도 독립이라는 흔한 말이 왜 이토록 어려운 숙제인가를 우리는 아직도 침통하게 되새기고 있다. 핵무기에 버금가는 탄저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땅에서 여러 해 동안 실험해왔던 미국이 요즘 수시로 군불 지피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또 천문학적 비용를 감당하면서 아마도 자청하여 사드를 설치할 것만 같다.

/정 양 우석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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