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시전집

윤재웅

발행일 2015-06-26 제11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詩 950편 ‘탄생 100주년’ 맞아 사후 첫 간행
한국 시문학의 역사이며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
우리도 이제는 서로의 흠결 관용으로 껴안아 줘야

미당 서정주 시전집(전 5권)이 최근 출간됐다. 1933년부터 2000년까지 70년 가까운 창작기간 동안 발표한 시들 950편을 모아 미당 사후 처음으로 간행하는 정본 시전집이다. 문학계의 경사다. 서정주는 한용운, 김소월, 정지용, 김영랑, 백석 같은 선배 시인들보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했으며,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다. 파란만장한 우여곡절과 번민하는 오욕칠정을 지나 심층 생의 매력을 탐구하는 삶의 지혜와 원숙한 달관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뜻깊은 시기를 맞아 시의 한 생애와의 온전한 만남은 거듭 경사스러운 일이다.

미당 시전집은 한 개인의 생애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말과 정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령 그가 20대 초반에 쓴 ‘화사’라는 시에서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했을 때, 현대 맞춤법 규정과 충돌하는 이상한 소릿값을 감지하게 된다. 주류어가 아닌 변두리어, 교양인의 문어가 아닌 일상 구어로서 자존감을 지켜 나가려는 젊은 시인의 의지는 ‘푸른 하늘을 원통히 물어뜯어야 하는’ 뱀의 저주받은 운명과 동일시되어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환경에 대응하는 ‘조선어의 투혼’을 증언한다. 암시적 어법 속에 강렬한 저항의 포즈가 있는 것이다.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드는 소리.……’(내리는 눈발 속에서는)가 보여주는 관용과 긍정의 세계는 한국전쟁 뒤의 참화와 폐허를 견뎌내는 민초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때는 꽃은 아직 없었고/꽃노릇을 대신하고 노는 것은/초록빛 도마뱀들이었었네/그리고 타오르는 불빛의/제비들이 날아다녔네.’(멕시코의 영봉 씨트랄테페틀이 어느 날 하신 이야기)에 오면 세계를 굽어보는 여유와 활달한 상상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 이 시전집은 그 자체로 한국 시문학의 역사요 우리 생활언어의 변천사다.

미당의 아름다운 시 세계를 향한 공감과 도취의 반대편에 그의 처신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모든 흠결이 덮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 문학을 다 읽기 전에 그의 흠결부터 말하는 성급함에서 잠시 비켜서는 일은 권면할 만하다. 우리 문학사는 ‘시의 생애’라 부를 만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져본 적이 없지 않던가. 시인은 “세계의 명산 1천628개를 다 포개 놓은 높이보다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하다”고 토로한다. 시가 생의 매력에 대한 심오한 탐구라는 뜻이다.

돌아보면 우리들 삶은 어제 오늘 다를 바 없다. 뜨거운 난로 위의 물방울처럼 이리저리 몰리며 뛰어다닌다. 급하고 강퍅하고 메마르고 팍팍하다. 배려와 관용과 인내심도 부족하다. 자기 잘못보다는 남의 탓을 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드러내어 헐뜯는다. 좋은 것을 좋다 말하려 해도 주변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우리는 어느새 진중하고 심오한 생의 심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서로의 흠결을 보면서 위로와 관용으로 껴안아 주는 일은 미룰 일이 아니다.

원로 언론인 김성우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어느 색도 물들일 수 있고 어느 색도 지울 수 있는 백색의 염료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가 녹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분노도 어떤 원한도 시는 용액처럼 녹인다.” 시에는 정서순화의 기능은 물론 상처치유의 기능도 있다. 미당 서정주 시전집이 보여주는 ‘시의 생애’가 바로 그렇다.

/ 윤재웅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윤재웅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