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얼리버드와 최저임금

▲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시급 ‘6천30원’… 노사간 관점 극명하게 엇갈려
노동계 기대치 못미치는 공수표만 남발한 정부
청년일자리 늘려 저임금·소득격차 해소 주력해야


‘얼리버드’(early bird).

이명박 정부 시절 특히 회자됐던 말 중 하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얼리버드론은 ‘아침형 인간=성공’이라는 등식과 맞물려 있었다. 이 등식을 굳게 믿고 많은 직장인이 자신의 체질과 무관하게 새벽마다 벌떡벌떡 일어났다.

여기에서 딴죽을 걸어본다.

벌레 한 마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꼬물꼬물 기어 다닌다고 치자. 그 벌레는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다른 벌레보다 먼저 새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벌레 입장에서는 ‘아침형 벌레=사망’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이렇듯 관점을 달리해보니 일찍 일어나는 것과 그 결과물, 다시 말해 인과관계에 엄청난 오류가 발생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시급을 올해보다 8.1% 인상된 6천30원으로 결정했다. ‘6030’을 바라보는 노사 간 관점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마치 새와 벌레의 입장에서 각각 맞이하는 아침 같다.

인상률만 놓고 보면 2008년 8.3% 인상 이후 가장 높다. 경총은 이와 관련해 “고율의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물론 소규모 영세사업자 입장에서 볼 때, 최저임금 인상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력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당연히 수용해야겠지만 더 이상 허리띠 졸라맬 여력조차 없는 통닭집, 동네 점포 사장님들은 근심이 앞선다.

그렇다면 근로자 입장은 어떤가.

“국민의 삶이 100원짜리 몇 개의 흥정으로 치환됐다”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의 논평은 시급 인상분 450원에 대해 느끼는 근로자들의 체감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생들이 주로 뛰어드는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하루 4시간 일하고 받는 최저임금으로 식료품을 구매해보니 콩나물 한 봉지 더 살 수 있게 되더라는 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이를 잘 부연해 준다.

이처럼 최저임금에 대한 노사 간 시각차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양대 노총이 최저임금 결정에 이의신청을 내기로 하는 등 올해엔 최저임금을 둘러싼 진통이 특히 심한 것 같아 우려가 앞선다. 사실 여기에는 정부의 잘못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올 초부터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강조해 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수를 살리려면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 논의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노동계의 기대치는 한껏 부풀어 올랐으나 결과는 당초 노동계가 요구한 시급 1만원은 커녕, 두자릿수 인상률이라는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공수표만 남발한 셈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공수표 남발로 인해 실추된 공신력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늘려 저임금 노동자를 줄이고, 소득격차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입을 소규모 영세사업장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도 마련해야 할 터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아침에 일찍 깨어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얼리버드’다.

/임성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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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기자

h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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