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이후진 정주국제학교 이사장의 ‘인생 후반기’

中 신도시의 교육열, 20년 월급쟁이 인생 뒤바꾸다

강기정 기자

발행일 2015-07-15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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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국제학교 이후진 이사장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는 노력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듯 진심을 다해 학교를 운영한 것이 오늘날의 정주국제학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 정주국제학교 이후진 이사장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는 노력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듯 진심을 다해 학교를 운영한 것이 오늘날의 정주국제학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불혹 삼성맨의 새로운 도전
2000년대 중국의 눈부신 성장 ‘자극’
새로운 땅서 글로벌 인재육성 결심

■수년만에 中 명문대 진학 요람으로
아이들 목소리 집중 ‘가족같은 학교’
칭화대·인민대 등 11곳 잇따라 합격


잘 나가던 샐러리맨은 일찌감치 세계 곳곳을 돌아 다녔다. 낯선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직장 생활 20년 동안 대륙을 넘나드는 게 예사였던 그에게 한창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유달리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행기 탈 일이 손으로 꼽았던 시절, 영어가 낯설고 해외 유학이 드물었던 그 시절, 외국 땅을 밟을 때마다 ‘세계화’를 아주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는 외국 아이들이 번번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2001년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교육의 도시’ 정저우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 동안의 호기심은 ‘새로운 땅에서 글로벌 인재를 키워보자’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로 진화했다. 교편을 잡던 아내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칭화대·베이징대 등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에 졸업생들을 대거 입학시켜 화제가 된 중국 ‘정주국제학교’ 이후진(50) 이사장의 얘기다. 7월께면 마무리되는 학생들의 대입 준비를 얼추 매듭짓고, 이달 초 한국에 잠시 귀국한 그를 14일 수원 경인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 샐러리맨, 낯선 땅에 국제학교를 세우다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 계열사에 근무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월급쟁이’ 가장이었다. 해외에 공장을 짓고 영업을 담당할 지점을 내는 일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는 게 그나마 다른 점이었다. 지난 달 독일을 갔다면, 다음 달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나날들이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당시 전 세계가 외치던 ‘세계화’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몸소 느꼈다.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갈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남기는 나라였다”는 이 이사장은 2001년 업무 등을 이유로 정저우에 4개월간 머물렀다.

중국 유학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한국 유학생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이 이사장은 ‘교육열 높은 신도시’ 정저우에서 생각을 곱씹었다.

직장 생활 20년, 어느덧 불혹이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제대로 보내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수차례 정저우를 오가는 동안 “중국에 오는 한국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새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낯선 땅으로 가야 하는 만큼 선뜻 답을 하지 않던 아내도 설득 끝에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기에,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는 아내였다. 중국어라곤 ‘니 하오’밖에 모르던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이 셋도 아빠를 따라 중국으로 향했다.

이 이사장은 “몇 년 동안 고민도 많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참 쉽지 않았다. 묵묵히 믿고 따라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지금은 ‘명문’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정주국제학교’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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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세운 작은 학교, 명문대학 진학의 요람 되기까지

지금은 중국 일류대학 입학생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정주국제학교가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언어도 서툴고, 태어난 곳도 다른 한국인이 중국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국제학교, 그것도 미션스쿨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저우가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잘 알려진 지역도 아니고, 이 도시에 한국인들도 많지 않다 보니 학생들을 모으는 일은 물론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는 이 이사장은 “그래도 주변의 이야기, 특히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학교를 가족처럼 위해 주는 마음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듯” 진심을 다해 학교를 운영한 것이 오늘날의 정주국제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재학 중인 그의 딸과 아들 역시 정주국제학교 졸업생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 학교에서는 원래 공부에 방해될까봐 이성교제를 금지했었는데,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제고해 달라는 목소리가 많아 고민 중”이라며 “저는 원래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육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에게 있다는 게 저만의 소신이고 철학”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교육에 대해 묻자 “정작 주인공인 학생의 목소리는 많이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달 초 한국에 잠시 귀국한 그의 첫 일정은 중국에서 힘들게 대학 입시를 치른 학생들과의 ‘졸업여행’이었다. 2박3일동안 여수에 다녀왔다고 한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올해에만 현재까지 졸업을 앞둔 36명이 칭화대·인민대 등 11개 명문 대학에 합격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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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진 정주국제학교 이사장은?

▲ 1965년 서울 출생
▲ 1987~2007년 삼성코닝정밀소재 근무
▲ 2008년 9월 중국 정주국제학교 설립
▲ 2015년 현재 정주국제학교 이사장, 정주한인회장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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