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사회적 유산

최일문

발행일 2015-07-1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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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일문 경동대 행정학과 교수
▲ 최일문 경동대 행정학과 교수
92세 할머니 아껴모은 1천만원
복지재단에 모두 전달
한달치 월급 내놓은 장애인…
부자·기업인 고액 기부보다
더 많은 감동을 주는 선행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가치


얼마전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올해 28억4천만달러(약 3조2천억원)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그의 과거 10년간 기부금 총액은 255억 달러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 부자순위 34위인 사우디의 알왈리드 왕자는 자신의 전 재산 320억달러(약 35조9천600억원)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왕자에게 영향을 준 인물은 워런 버핏과 함께 가장 많은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빌 게이츠 부부이다. 기부왕으로 불리는 빌 게이츠는 1994년부터 350억달러(약 40조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 갑부들의 재산 기부는 록펠러, 카네기, 헨리 포드부터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엘론 머스크(테슬라 CEO), 마이클 블룸버그(전 뉴욕시장),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CEO), 조지 루커스(영화감독), 팀 쿡(애플 CEO) 등으로 맥을 잇고 있다.

지난달 빌 게이츠는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억만장자가 전 세계적으로 137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설립한 ‘더 기빙 플레지’는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최소 50%를 기부할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기부가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들의 모범적 행동이 전 세계의 기부문화와 사회발전에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적 유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부자가 아직까지 없다. 어찌 된 이유인지 우리나라의 재벌 오너, 대기업 창업자, 고관대작 혹은 내로라하는 주변의 부자들에게서는 귀감이 될 만한 기부 소식이 흔치 않다. 오히려 어떤 일(사건)이 생겼을 때 사회적·법적 책임의 감경을 위해 사재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후 시간이 지나 ‘악어의 눈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부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껴 모은 1천만원을 복지재단에 모두 기부한 92세 할머니,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한달치 월급을 병원 기부함에 넣은 장애인, 익명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1억원 이상 기부자), 주식 투자수익을 꾸준히 고교생의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는 대학생, 자신의 전 재산인 자택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시장 상인 등 우리 주변에는 따뜻하고 훈훈한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기업인들이나 부자들의 고액 기부 소식보다 훨씬 더 많은 감동을 주는 선행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유산이다.

인간은 대부분 유산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유산은 자손이며 교훈이나 기술과 지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부동산, 돈(재물)일 수도 있다.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는 재산의 사회환원을 통해 사회적 교훈이라는 유산을 남긴 분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1년 세상을 떠나기 전 작성한 유언장에서 “손녀의 등록금을 제외한 재산을 사회에 전액 기부한다. 아들은 대학 공부를 다 시켰으니 자립해서 살라”는 뜻을 남겼다. 그는 또 “살아 있는 동안 친척들을 회사에서 다 몰아내겠다”는 소신에 따라 그의 아들과 조카를 해고했고, 1971년 이후 유일한 박사의 유족은 회사와의 인연이 끊어진 상태다.

모두가 유일한 박사와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재산의 사회환원을 약속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든 법정스님의 ‘고요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나세나’ 중의 한 구절을 음미해 보면 조그만 유산 하나 남기고 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 입고 갈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는데, 그렇게 모두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데, 이름은 남지 않더라도, 가는 길 뒤편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나 없도록, 허망한 욕심 모두 버리고, 베풀고, 비우고, 양보하고, 덕을 쌓으며, 그저 고요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나세나.”

/최일문 경동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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