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그리스의 전쟁, 유럽의 오디세이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3차구제금융 힘겨루기 그리스 항복
트로이전쟁 양상과 매우 닮아
통합과정에 근본적 문제는
경제 격차 큰 회원국간 갈등
유럽통합 성공적 마무리 짓자면
부실은행 통폐합·채권 발행해야

유럽 통합의 역사는 60여년 전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상 초유의 전쟁이 두 차례나 벌어진 이곳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통합의 첫 발걸음을 떼면서 내건 이름은 ‘유럽(Europe)’이었다. 대륙의 이름으로 오래전 뿌리를 내린 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유럽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다. 신의 제왕 제우스는 흰 소로 변장해 그녀를 납치한다. 이를 눈치챈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그녀를 크레타 섬에 유배시킨다. 그곳은 훗날 유럽 문명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와 로마 제국 당시 그녀의 이름을 딴 유럽은 오늘날의 유럽은 아니었다. 발칸반도 위쪽의 트라키아 지역으로, 두 제국 입장에서는 서쪽 땅이나 버려진 땅이란 의미가 강했다. 8세기 중반 샤를마뉴 대제가 대륙에 영향력을 키워가던 시절에야 유럽은 대륙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됐다.

오늘날 유럽통합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것도 대륙에 유럽이라는 이름을 선사한 그리스로 인한 것이다. 3차 구제금융을 둘러싼 유럽통합 주도국과 그리스의 힘겨루기는 채권단의 완승으로 끝났다. 국민투표까지 결행하며 채권단이자 통합 주도국이 내건 조건을 거부하려던 그리스의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스 내부에서는 이번 협상타결을 1차 대전 패배 후 독일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베르사유 조약에 비교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4년 이상 끌어온 그리스 사태는 당분간 잠잠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의 근본적인 문제가 풀린 것도, 유럽통합의 미래가 한층 더 밝아진 것도 아니다.



이 상황은 놀랍게도 그리스 신화의 모태가 되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연상케 한다. 전자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간의 10년 전쟁을 그린 대 서사시고, 후자는 전쟁이 끝나고 귀국길에 오른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 모험담을 그렸다. 3차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그리스의 사실상 완전 항복까지는 트로이 전쟁 양상과 흡사하다. 다만 트로이 대신 그리스가 유로존 연합국들과 대치했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일리어드’에서 연합국이 최종 승리를 거두기 위해 트로이에 제공했던 것이 목마라면,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는 엄청난 부채다. 그리스는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2천400억유로(약 300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번에는 3차 구제금융으로 모두 1천210억유로를 지원받기로 했다. 목마 속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휩쓸었듯, 빚이 빚을 부르는 상황에서 그리스는 추가 구제금융 외에 목숨을 연명할 방법이 따로 없었다.

그리스 사태를 단지 정부와 국민의 무능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나 섣부른 복지정책이 부른 비극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그보다는 유럽통합 과정에서 잉태된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 온 유럽통합 과정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력 격차가 큰 회원국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서 독일과 그리스는 완전히 상반된 정서와 계산을 보여줬다. 이는 일시적 봉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통합과정이 길어지면서 후유증으로 생겨난 회원국들의 절름발이 경제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경제가 어려워져도 통화량이나 금리, 환율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통화금융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처럼 경제상황이 안 좋은 나라들은 재정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그 결과물이다. 오른발이 묶인 2인3각 경기에서 욕심이 앞서 왼쪽 발만 내딛다 풀썩하고 쓰러진 격이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안 좋은 나라들 상당수가 비슷한 위기를 겪어 왔다.

유럽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자면 이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러자면 부실화된 은행들을 통폐합해야 한다. 유럽의 이름으로 채권(유로본드)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이를 갚기 위해 공통세목(稅目)의 과세도 해야 한다. 독일의 희생뿐만 아니라 리더십이 절실한 대목이지만, 조만간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전쟁’은 끝났지만 ‘유럽의 오디세이’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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