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제2연평해전 전사’ 故 한상국 상사 미망인 김한나씨

잊히는게 제일 두려워
'6용사' 명예 회복해야

이윤희 기자

발행일 2015-07-22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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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상국 상사 미망인 김한나씨
경기도 광주 곤지암 커피숍에서 故 한상국 상사 아내 김한나씨가 경인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교전 당시 중사 진급 불과 이틀 앞뒀던 남편 13년만에야 상사로 추서
“현충원 갈때마다 늘 미안했는데 이제야 면이 서… 영화도 한몫한듯”

‘화병’으로 미국행 녹록치 않은 생활중 2013년 광주시 공무원 ‘새삶’
전사자 ‘공무상 순직’ 처리 말안돼 맘같아선 거리서명이라도 받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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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분이시죠… 몰라뵈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41)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들어선 자그마한 커피숍, 김씨를 알아본 20대 종업원이 수줍게 말을 건넸다.

영화 ‘연평해전’이 관객 500만명을 넘어서며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전사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광주시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김씨는 이런 영향으로 최근 자신에게도 이목이 쏠리자 부담스러움을 표하면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솔직히 제가 인터뷰할 감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영화 연평해전에 대한 관심도 있고 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렇게 관심을 받을지 모르니 6용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광주시 9급 공무원으로 채용돼 현재 광주 곤지암도서관에서 근무 중인 김한나씨는 수줍던 첫 모습과 달리 인터뷰가 시작되자 마음에 담은 얘기를 빗장 풀듯 꺼내 갔다.

단연 첫 화제는 지난 10일 해군을 통해 공식발표된 고 한상국 중사의 계급을 상사로 높이는 추서 진급으로 시작됐다.

“일이 발생하고 당시부터 계속 주장해 왔던 사안이지만 13년이란 시간이 걸리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이번에 추서 진급이 이뤄져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현충원에 갈 때마다 늘 미안했는데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이제야 면이 서는 것 같습니다”라는 김씨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던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번 결정은 해군본부 전공사망심사위원회가 한상국 상사의 전사일을 제2연평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에서 시신을 인양한 같은 해 8월 9일로 변경한 데 따른 것이다. 연평해전 당시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의 조타장이었던 한 상사는 고속정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전사자 중 가장 늦게 발견됐으며 40일 만에 인양됐다.

당시 국방부는 군 인사법 시행령에 따라 고인의 계급을 일계급 특진 추서했는데 그를 하사로 판단, 중사로 추서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한상국 상사가 해전 당시 중사 진급을 불과 이틀 앞둔 진급 예정자였던 점을 들어 그의 상사 진급 추서를 요구해왔다.

“해군에서는 진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중사 진. 그래서 남편은 진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당시 중사 옷을 입었고 다 중사로 바꿔놓은 상태였지요. 때문에 당시에도 상사로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지적들도 많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사실 영화 연평해전이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으며 그날의 의미를 부각해준 것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했지요.”

얘기는 자연스레 영화 ‘연평해전’으로 넘어갔다. 지난 19일 기준으로 영화 ‘연평해전’은 개봉(6월 24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관객 558만여명을 모으며, 올해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는 시사회를 포함해 2번 봤습니다. 시사회 날은 너무 울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사실감 있게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의 역할을 맡은 배우 진구씨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남편을 표현해냈더라고요. 진짜 살아 돌아온 것 같이 느껴졌어요”라는 김씨는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은 남편을 너무 잘 표현했다며 연신 배우의 연기에 감사함을 표했다.

故 한상국 상사 미망인 김한나씨
경기도 광주 곤지암 커피숍에서 故 한상국 상사 아내 김한나씨가 경인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실제 배우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실제로도 남편은 무뚝뚝하지만, 속 정이 깊어서 저를 잘 챙겨줬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애시절 얘기를 좀 더 해달라고 했다.

“1년을 만났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군이다 보니 배를 타는 시간이 많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만남은 열 번 남짓이고 주로 전화나 이메일 등을 하며 마음을 주고받았어요”라며 추억에 잠기던 그는 갑자기 “정말 죄송하지만 그 얘기는 그만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다 지난 얘기고 아직 옛 얘기를 할 때마다 그가 많이 생각나 힘드네요”라고 말을 줄였다.

사실 김씨는 연평해전이 있고 나서 3년 후인 2005년 한국을 잠시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미국으로 출국하는 그녀를 한 언론사에서 취재를 했는데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것이 와전되며 나라를 버리고 간 것으로 비쳐져 수모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당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죠. 그래서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간 겁니다. 뉴욕에서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했고, 영어가 안 되다 보니 더 힘들었지요.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느낀 바도 많았습니다”는 그는 떠난 지 3년 되던 해인 2008년 귀국하게 된다.

“보통 고향을 떠나 3, 5년에 향수병에 걸린다고 하잖아요. 그때가 딱 그랬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도 보고 싶었고요.” 그녀가 귀국한 2008년은 이명박 정부가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한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와 한국에서의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대학도 졸업(2011년)하고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전쟁기념관에서 근무하며 생활했지만 건강이 안 좋아져 담낭제거 등 각종 치료를 받았다. 일종의 ‘화병’ 증세로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자연히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고, 그러던 차에 지난 2013년 광주시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며 새삶을 찾게 됐다.

“너무 감사하게도 제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광주시에 시설직 공무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이달 초에는 승진도 하게 돼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의 배려 속에 잘 살아가고 있지만, 이맘때만 되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라는 그는 요즘 부쩍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솔직히 잊혀지는게 두려워요. 제2연평해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을 때 남편을 비롯해 조국을 위해 산화한 6용사의 명예회복(전사자 처리)이 이뤄졌으면 하니까요”라며 조심스레 화두를 꺼내 든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날을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남편을 비롯한 6용사들이 월드컵 결승전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북측의 기습도발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현충원에 최초 안장 시 묘비명은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이후에야 ‘연평도 근해에서 전사’로 수정됐지요”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하지만 여전히 전사자가 아니라 ‘공무상 순직자’로 돼 있고 명백히 북과의 전투 중에 ‘전사’한 용사들을 ‘공무상 순직’ 처리한 것은 역사적 진실과 전사자들의 명예 회복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 같아선 거리로 나서 6용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거리서명이라도 받고 싶어요. 하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쉽지 않은 일이네요. 사실 제 남편을 비롯해 전사자들은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마땅히 받아야 할 전사자로서의 명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용사들에 대한 예의와도 같은 것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

이와 관련해선 현재 국회에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과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연금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국방부와 이견 속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를 회복합시다’라는 서명운동이 진행되며 국민적 관심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인터뷰하는 이유이자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2연평해전과 관련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6용사와 18명의 유공자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 우리 역사이고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그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글=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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