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대책, 재벌(財閥) 진정성 갖고 나서라

이영재

발행일 2015-07-2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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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재 논설위원
▲ 이영재 논설위원
10대기업 유보금 500조 돌파 불구 일터창출 인색
인턴 명목 노동력 착취 ‘열정페이’ 사회초년생 울려
‘10만명 채용’ 美 기업 실업해결 프로젝트 배워야


며칠전 교수인 친구에게 메일을 받았다. “열정페이에 멍드는 사회 초년생들이 불쌍하다. 허울뿐인 직함에,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다. 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 자신과, 투자도 안하면서 사내 유보금만 잔뜩 쌓아 놓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밉다.” 열정페이로 상처받는 제자들을 지켜보는 교수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1년 사이 40조원이 늘어나 500조원을 돌파했다.

그제 정부가 앞으로 3년간 20만개 이상 청년 일자리 기회를 재계와 공동으로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정년이 연장되는 공공기관·공기업 종사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이로부터 절감되는 인건비로 청년을 신규 채용하고, 교원 명예퇴직을 확대해 신입 교사를 새로 뽑는 등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대책에 다급성이 느껴지나, 단언컨대 한국의 재벌들이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 한 이번 대책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열정페이’는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을 무급 혹은 저임금 인턴으로 고용하는 관행으로 올해 초 디자이너 이상봉이 저임금에 인턴을 착취하고, 소셜커머스 업체가 수습직원을 2주간 부려먹은 후 전원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열정페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가 됐다. 이 땅에서 젊은이들의 사회생활 첫발은 ‘열정페이’로 시작된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패션, 미용, 호텔, 제과제빵 등 인턴을 다수 고용한 151개 업체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03곳에서 255건의 노동 관련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된 사업장 중에는 재벌 계열의 유명 호텔과 유명 패션, 미용업체 등이 다수 포함됐다. 여름철 성수기에 필요한 인력을 현장실습생으로 충원한 재벌 계열의 한 호텔은 100여명의 인력을 실습생으로 채용한 뒤 일반 노동자와 똑같이 야간·연장근로를 시켰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월급은 고작 30만원에 불과했다. 청년들의 고용의 질이 이 지경이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에 인간관계, 내집 마련 포기를 더한 ‘5포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JP모건, 호텔체인 힐튼, 월마트, MS(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이른바 미국 각 기업의 대표주자들이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오는 2018년까지 청년 10만명을 정규직, 인턴·시간제로 신규 채용키로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것은 굴지의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 때문이다. 1만명 채용을 발표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문화·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우리는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사업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해 청년실업 해소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 상승이 내수 기반 약화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안전과 복지비용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데 2013년 한해 무려 30조원을 투입한 미국정부는 이렇게 기업이 먼저 청년실업 해소에 나서자 크게 반기고 있다. 정부의 힘만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슐츠 회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청년실업 프로젝트는 절대 자선사업이 아니다. 지금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슐츠 회장의 이 말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우리 재벌들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란 말은 아주 오래전, 한 권력자가 이 땅에 재벌을 만들어 주었던 그때도 통용됐던 말이다. 이제 진정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 이영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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