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아직도 만사형통?

이용식

발행일 2015-08-2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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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논란·논의 대상 올바른 이해와
객관적 인식 있어야만
토론은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소통은 생산적으로 이뤄진다
자신의 시선과 문제의식에 대한
겸허한 성찰 우선돼야 하기때문


외국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그 의미가 그들에겐 전혀 다르게 전해진다는 사실에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상식처럼 그냥 일상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영어 단어인데, 그 사람들은 그 말을 매우 생소하게 받아들일 때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이들이 라이벌(rival)이란 말을 매우 낯설고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매우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수단 출신으로 난민자격으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던 비교적 지적 수준이 높은 여성이었는데, 제가 이 사람에게 우리에겐 상식적인 소위 라이벌 관계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란 말은 우리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개념으로서 일상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단어들이기도 합니다. 국가발전, 민족의식, 민족감정, 역사의식 등과 같은 단어 역시 우리는 이 말의 사용에 특별한 예외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그 함의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식적인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출신과 배경 등 여러 환경이 같지 않은, 이른바 우리와는 삶의 조건과 그것이 결과한 역사가 다른 외국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이 개념들은 당연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소통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수단쯤으로 운위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집권여당이나 야당,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해결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해 겉돌고 있고, 지금의 정당은 당원이나 국민들과 소통하지 못해 정치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지역의 일부 시민단체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할 때마다 시장이나 부시장이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주장해 왔습니다.

최근 달포 사이에 저희 가족은 세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미션임파서블’, ‘베테랑’, ‘암살’이 그것들인데, 그 영화에 대한 소감이나 평가가 저희 가족들 간에 너무 달라 곤혹스러웠습니다. 세대별로 큰 차이가 났던 것인데, 그 중 ‘베테랑’ 한편만을 같이 보았던 고령의 저희 아버지는 재미는 있는데, 너무 시끄럽고 산만해서 도무지 그 스토리를 따라잡기 어려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미션임파서블’에 대해서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란 점에서 특별한 이견이 없었는데, 나머지 두 한국영화에 대해서는 저희 가족 간에 그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사회인인 큰 아이와 대학생 둘째 아이는 ‘베테랑’에 대해 무지하게 좋은 평가를 내렸고, 그 감흥을 잊지 못해 며칠 있다 그 무더위에 다시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암살’에 대해선 혹평이었습니다. 스토리가 너무 작위적이고, 배우들의 멋 부리는 듯한 허세 연기가 영화의 의미와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두 영화에 대해 우린 아이들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의견과 평가가 다른 이유는 영화의 의미에 대해 저와 제 아이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이유도 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암살’이란 영화가 가진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시대적 의미에 대해 주목해서 후한 점수를 주었고, 아이들은 영화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만이 영화를 보는 주된 이유였던 것입니다.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서로 같아야 합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그 내용과 근원을 달리 인식한다면, 외국인과의 대화나 제 가족들 간의 영화소감 나누기에서처럼, 당연히 소통은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논란과 논의의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객관적 인식이 있어야만 토론은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소통은 생산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시선과 문제의식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용식 인천발전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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