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인천상륙작전 취재 유명세 탄 美여기자 ‘히긴스’
영화처럼 전쟁터 묘사했지만 냉정함 잃지 않아
우리도 남북분단 상황 직시하고 차분할 필요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무박 4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전쟁으로 치닫던 남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 무드에 빠져들고 있다. 손뼉을 치며 환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냉정히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생각하자니 마냥 신기해할 일도 아니다. 치열했던 싸움이 그저 한판 끝났을 뿐이다. 남북관계는 그동안 70년 가까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 같은 사이클을 오갔다. 일종의 예측 가능한 패턴까지 생겼다. 대결상태가 극한까지 치달으면 곧 해빙무드로 돌아서고는 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우리측 지역에서 북한군의 목함지뢰가 터지고, 대북 확성기가 11년 만에 가동되고, 다시 우리 땅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지고, 그리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고 하는 요 며칠간은 마치 종군기자라도 된 듯싶었다. 일반 기자들이 가져야 할 주요 덕목 중 하나가 냉정함인데, 수많은 주검의 현장에 선 종군기자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의 가장 유명한 종군기자는 미국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라고 할 수 있다. 히긴스는 특히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현장 취재로 유명세를 탔다. 히긴스가 당시를 묘사한 글이 2001년 9월 15일 상륙작전 기념일에 맞춰 출간된 ‘인천은 불타고 있는가’란 책자에도 실렸다. 승국문화재단이 자료집 형태로 발간한 이 책에는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히긴스의 종군기가 실렸다. 이 글 중에 히긴스의 전장(戰場)에서의 냉정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상륙) 얼마 후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낙조는 처음에 희미했으나 점점 선명해졌다. 녹색의 해병 머리 위를 비췄는데 그 빛은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이 기술적으로 만들 수 없는 찬란한 빛이었다. 사실 이 낯선 낙조는 부둣가의 화염과 결합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관을 이루었다.’ 히긴스가 전쟁을 마치 영화 관람하듯 취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히긴스는 한국전쟁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다른 종군기자들로부터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스스로 자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당시 AFP 등 프랑스 언론의 종군기자들은 유일한 여성 기자이던 히긴스를 맥아더 장군의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 그리면서 ‘히긴스의 기사는 전쟁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기자들의 얘기와 히긴스의 월미도 석양 감상기가 묘하게 겹치면서는 히긴스가 얄밉기까지 하다. 아무튼 히긴스는 전쟁터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국민 모두가 히긴스처럼은 아닐지라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남북의 분단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해방과 분단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멈춰진 전쟁 상황을 종군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지켜본다면 분명 그렇지 않을 때와는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길 것이다.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싸움의 승패는 당사자의 냉정함 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전쟁 당사자인 우리가 남북의 긴장과 화해 패턴을 제대로 읽으면서 남북 당국자들의 행보를 평가하고 비판한다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매체가 허위보도까지 할 정도였던 사재기 현상이 사라진 점은 우리 국민의 한판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냉정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난 전쟁 장면을 잘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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