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의 과감한 외교행보

오대영

발행일 2015-09-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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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한·중 정상회담으로 인해
한·미·일 공조체제 흔들리거나
동아시아 안보틀 바뀌지 않아
10월엔 오바마와 회담도 가져
우리의 외교적 입지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정착 큰 도움 기대


8월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날이다. 그날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조선이 어떻게 전쟁 한번 없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외교의 완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쇄국정책에 빠져있을 때,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 세력들은 국제사회와 외교를 배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메이지유신 전에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江戶)막부는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끌고 온 흑선의 위력에 눌려 개국하면서 불평등조약을 맺은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세력은 불평등조약을 해소하고, 서구열강의 침략에서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서 국제법인 만국공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국제법 원서들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많은 인재들을 서구로 유학을 보내서 국제법을 공부하게 했다. 서현섭이 쓴 ‘지금도 일본은 있다’에 따르면 1873년 일본이 서구로 유학을 보낸 사람은 373명이고, 문교부 예산의 18%를 썼다. 앞서 일본은 1872년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에서 387명의 법학자들을 법률고문으로 초빙했다. 일본은 이들을 모셔오기 위해서 외무대신 급료의 2배를 지급했다. 이들은 일본에 서양식 외교술과 국제법 이론을 가르쳤다. 일본 근대법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부아소나드도 1873년 일본에 온 후 1874년 일본의 대만 출병과 1875년 조선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강화도 사건 등에서 일본을 크게 도왔다. 일본은 국제법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선할 수 있었고,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정책을 공부하면서 조선의 식민지화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일본은 1905년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영국과는 영일동맹, 러시아와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해 11월 일본은 조선과 을사늑약을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후에 본격적으로 식민화를 추진했다. 고종황제가 1907년 이준 등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내서 조선의 독립을 보존하려 했으나, 이미 조선은 세계지도에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흔히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외교다. 외교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서독이 동독과 전쟁없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은 물론 오랜 적이었던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과 오랜 기간 외교적 협력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금 동아시아가 출렁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맞먹는 대국이 되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시행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화가 목전에 다다른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집권 이후에도 계속 핵개발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상황으로 우리의 외교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한때는 우리 외교가 고립돼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다. 미국 우방 중에서는 유일하게 참석하는 외국 원수라고 한다. 역대 한국대통령으로서도 처음이다. 반면 중국의 오랜 맹방이던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참석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비롯해서 통일 문제까지, 한반도의 미래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번 방문으로 한국·미국·일본의 공조체제가 흔들리거나, 동아시아의 안보틀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게다가 남북한 간에는 8·25 고위급 접촉 협상이 타결된 이후 이산가족 상봉 등 교류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10월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도 갖는다. 박 대통령의 과감한 외교적 행보가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고, 한반도에 순풍을 몰고 오기를 기대한다.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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