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 업계 ‘거물’ 박경래 (주)윈앤윈 대표

양궁 전설에서 기업 신화로 “구체적 목표가 날 이끌었다”

윤인수 기자

발행일 2015-09-0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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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기흥구에 위치한 위아위스 기흥파크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업계의 ‘거물’로 변신한 사나이 박경래(59)씨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용인 기흥구에 위치한 위아위스 기흥파크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업계의 ‘거물’로 변신한 사나이 박경래(59)씨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 양궁 세계 1위에 올려놓기까지
국내 첫 국가대표 한국新 27차례 경신
일찍 지도자 준비 일본잡지 보며 공부
남자 대회 싹쓸이·남녀 동반우승 견인
지도자들 강연 ‘세계적 코치’ 목표달성

■활제조 정상 찍고 자전거사업 진출
활 전량반품 난관 딛고 최고제품 생산
야마하 이어 당대 최강 호이트도 꺾어
활 핵심 ‘카본기술’로 MTB 개발 성공
경기력 향상 ‘韓대표 스포츠 브랜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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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양궁역사의 ‘전설’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업계의 ‘거물’로 변신한 사나이. 박경래(59) ‘(주)윈엔윈’ 대표의 인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한국 최초 국가대표 양궁 선수, 한국 양궁을 세계 랭킹 1위에 올려놓은 지도자, 세계 활 제조업계 점유율 1위 기업의 대표. 그의 삶은 끊임없는 반전과 도전으로 점철돼 있고, 지금도 그의 삶은 계속 진화를 꿈꾸고 있어서다.

박 대표는 최근에 세계 1위 브랜드인 윈엔윈 양궁 활의 핵심 기술인 나노 카본 소재를 자전거에 도입해 카본 자전거 산업에 새로운 도전장을 냈다. 지난 10일 용인 기흥에 위치한 위아위스 기흥파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활동, 그리고 활 사업에서 각각 나름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면서 “그 목표들을 하나하나 이뤄냈더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가 고향이지만 박 대표는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동아고등학교 재학시절 취미로 시작한 양궁이 박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해양대학을 나와 마도로스를 꿈꾸던 그가 고3 때 양궁 종합선수권대회에서 한국신기록 6개를 세우며 대회 전관왕에 오른 것이다.

이전까지 신통찮았던 기록이, 그 대회에서 기적처럼 솟구쳐 오른 이유를 그는 지금도 모른다. 그저 운명이랄 수밖에. 그렇게 1975년 초대 양궁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그는 “국가대표에 발탁됐을 때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예정돼 있던 국제대회 출전이 자주 취소되면서 세계 무대에서 뜻을 펼칠 수 없었다. 결국 박 대표는 국가대표의 꿈을 접고 지도자로서 성공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수로서 실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그는 한국 신기록을 27차례나 갱신했다. 그의 개인 최다 신기록 경신 횟수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신화다.

그가 지도자 준비를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시절 무렵. 박 대표는 “목표가 좌절되고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남들보다 일찍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시엔 양궁에 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시점이었을 뿐더러 양궁에 관한 전문 기술은 일본 잡지를 통해 습득해야 했다. “지도자 공부를 할 때 커리큘럼을 스스로 만들어 공부해야 했어요. 또 일본 잡지를 읽기 위해 2학년 1학기에 일본어 공부만 하루에 15∼16시간을 할 정도로 양궁 공부에 매달렸죠.”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일본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양궁 이론을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1년도 토지공사 실업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대표는 2년 후 국가 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남자 대표팀을 맡으면서 세계 양궁계의 기린아로 부상한다. 한국은 1985년 세계 선수권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단체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당시 최강이었던 미국이 24회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고 객관적인 전력에선 일본보다도 약했던 전력을 다듬어 우승을 일구었으니 ‘박경래’ 이름 석자는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 남자 양궁은 1988년 올림픽에서 또 한번 미국을 꺾으면서 명실공히 세계 정상팀으로 발돋움했다.

박 대표는 올림픽이 끝난 후 초대 남녀 대표팀 상임 총감독에 올라 1991년 세계선수권에선 처음으로 남녀 동반 우승도 이끌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그는 국내외 양궁역사에 ‘초대’와 ‘최초’의 수식어를 잇달아 새기면서 승승장구했다.

여기서 멈췄으면 박경래의 전설은 빛을 바랬을 것이다. 그는 한국 엘리트 양궁의 중심에서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스스로 마감하고 1993년 사업에 뛰어든다.

“대학 시절 내가 생각했던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세계적인 코치’였고, 세계적인 코치는 ‘세계 양궁인들에게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91년 미국 양궁협회의 초청으로 400∼500명의 지도자들에게 강연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드디어 세계적인 지도자의 꿈을 이루자 목표 상실의 허무함이 나 스스로를 다른 곳으로 이끈 것 같다”는 것이 인생 전환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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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자리를 내던질 수 있는 도전정신이 그의 안주를 방해한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기업이 양궁 활 제조업체인 윈엔윈 주식회사다.

하지만 역시 사업은 낯선 만큼 만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사업 초기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제품을 만들기까지 2년을 준비했고 1995년 6월 첫 수출을 이뤄냈지만 활에 문제점이 발견돼 전량 반품되는 상황이 발생해 투자금을 날리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없던 지도자 커리큘럼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대성했던 그였다. 포기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원재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설계부터 시작해서 다시 생산 라인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활이 ‘윈액트’였다.

이 활은 안정성과 내구성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경기용 제품이었던 호이트와 야마하 보다 품질에서 월등했다. 1997년도에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9년 즈음엔 안성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때마침 이은경, 홍성철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윈액트를 가지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윤미진이 윈액트로 금메달을 따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01년 일본 시장에 들어간 윈엔윈은 이듬해 활 생산을 중단한 야마하 공장을 인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주변에서 시작해 본류를 장악했으니, 박 대표는 그 때의 통쾌함을 잊을 수 없다. 윈엔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활을 만들겠다’는 박 대표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제조 방식을 개발해냈고 결국 그 노력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최고 품질의 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만약 처음에 일본과 미국 기술을 차용해 공장 설비를 갖췄다면 영원히 삼류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양궁 사업을 하면서 당대 최고 활이었던 호이트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마침내 2011년 세계 선수권 참가 선수 중 53%가 윈엔윈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 활의 핵심 기술인 카본 소재 기술로 자전거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2011년부터 MTB 자전거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위아위스’라는 자전거 브랜드를 만들고 카본 자전거 개발에 매달렸다. 그로인해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카본 소재로 된 전통적 스타일의 자전거를 개발해내는가 하면, 프레임 630g의 초경량 자전거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위아위스는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유로 바이크쇼에서 유럽인들의 호평을 받으며 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중이며 올해말에는 일본 바이크쇼에도 참가한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국내에서 가격이 맞지 않아 자전거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한국에도 자전거 팬텀 문화가 형성됐고 한국인 만큼 자국산에 대한 애착이 높은 민족은 없다”며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다. 실제로 올해 위아위스는 1천200대 판매를 목표로 삼았는데 벌써 판매가 완료된 상태다.

내년에는 2천500대가 목표라는 그는 “대학팀과 실업팀 선수들에게도 우리 자전거를 보급해 알리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위아위스 자전거로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맞는 자전거를 제공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포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스포츠 전문인으로 갖고 있는 노하우와 카본 기술을 바탕으로 국제적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서 “차세대에서라도 이것이 가능하게끔 내 대에서 그 토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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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윈엔윈 박경래 대표는?

▲ 1956년 출생
▲ 1975년 부산 동아고 졸업
▲ 1979년 동아대 졸업
▲ 1990년 중앙대학원 졸업
▲ 1975년 국가대표 발탁
▲ 1983년 국가대표 코치
▲ 1985년 세계선수권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86년 아시안게임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팀 단체전 금메달
▲ 1991년 국가대표 총감독
▲ 1991년 세계선수권 남녀 동반 우승
▲ 1993년 윈엔윈 설립
▲ 2009년 나노카본 개발 성공
▲ 2014년 위아위스 브랜드 론칭

/대담=윤인수 부국장·정리=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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