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돈에 취하면 안 된다

김방희

발행일 2015-09-10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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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신흥 부유층 도심으로 진입
임대료 높여 상권개발 주역인
소규모 자영업자들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도시엔 범죄·부정 들끓고
자금 멈출땐 활기 떨어질 수도


사무실이 그곳 귀퉁이에 자리 잡은 터라, 이웃들로부터 홍대상권 관련 소문을 심심찮게 듣는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빈번하게 들은 소문은 중국 자본의 유혹이다. 이 상권에 중국 관광객(遊客·유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매장 임대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커를 상대로 주로 인삼이나 화장품·가전제품을 파는 임시 매장이다. 이들은 상권 내 건물주들에게 기존 임대료의 2~3배에 달하는 후한 조건을 내건다. 이런 치명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건물주는 거의 없다. 그 결과 이 거리의 주역이었던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창의적 문화예술 단체들은 짐을 싸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세계 주요 도시가 직면한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 원주민 구축) 현상이다. 신흥 부유층이 도심으로 진입하면서 임대료를 높여 놓는 바람에 기존 주민들이 주택가나 상권에서 쫓겨나는 일을 말한다. 솔직히 시장경제의 부산물 같아서 이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다. 도시가 돈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사가 워낙 길다는 점도 이를 당연 시 여기게 하는 요소다. 3세기경 로마나 로마령 영국에서도 이 문제가 논란이 됐을 정도였다. 당시는 오래된 주택가에 소규모 가게가 파고든 것이 문제였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인의 거리였던 홍대가 오늘날 유커 전용매장과 대기업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가 즐비한 거리로 바뀌기 전부터 그랬다.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그 거리의 주역인 포토그래퍼들이 쫓겨났다. 청담동에서는 웨딩숍에 신예 디자이너들이 밀려났다. 이 현상의 역사성을 반영하듯,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도 오래전 일이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사 계급(gentry)의 도시 점령을 이 말로 일반화했다.

그렇다면 늘 있어 왔던 일이자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이유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용인해야만 할까? 벌써부터 몇 가지 문제가 예상된다. 우선, 도시에 범죄와 부정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런던 고급 주택가의 집값과 임대료를 고공행진하게 한 것은 주로 러시아 범죄 조직의 은닉 자금이었다.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뉴욕 고급 콘도미니엄 역시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검은돈이 출처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종류의 자금 유입이 어느 순간 멈출 때 도시의 활기가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 홍대상권 내 일부 건물주들은 지난 몇 달간 이미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한 바 있다. 메르스 사태로 유커 유입이 중단되자 그들을 대상으로 한 임시매장 일부가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높은 임대료를 기대해 성실한 자영업자들을 내쫓았던 건물주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자본이 국내 어느 곳보다도 선호했던 제주 지역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유커가 더 이상 찾지 않는다면, 중국 자본이 달려들지 않는다면 이곳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최대 해악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설 땅을 없앤다는 점이다. 정작 상권개발의 주역인 그들은 치솟는 임대료로 상권이 형성조차 되지 않은 주변부로 내몰린다. 그곳에서 재기의 기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주변부 상권을 일구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이런 자조어린 푸념이 터져 나온다. ‘장사가 잘 돼도 고민, 잘 안 돼도 고민이다. 잘 안 되면 어떻게 임대료를 낼까가 고민이지만, 잘 되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도시 재정을 들여가며 싼 임대료의 주택이나 상가를 공급하려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주와 자영업자간 자율 협약을 권장하고 있다. 자영업자들도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미친 상권에 맞서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결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돈에 취하면 안 된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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