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 실향민 반응]"예전과 분위기 달라진 북한, 이번에는 믿음이 간다"

김민재·배재흥 기자

발행일 2018-04-28 제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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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연백군 실향민 권용복(74), 유래동(78), 이범수(84) 할아버지.(왼쪽부터)

김정은 군사분계선 너무쉽게 넘어
60여년 기다려온 1세대 만감 교차
5만7천여명까지 줄어든 이산신청
"남북 교류·상봉 성사 계기 되길"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잘됐으면 좋겠어요."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출신 김은중(84) 할아버지는 27일 오전 9시3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인천 강화도 집에서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이날 두 정상은 '너무나 쉽게' 군사분계선의 낮디낮은 턱을 넘어 남북을 오갔다.

그는 연안중학교를 다니던 1951년 1·4후퇴 때 강화로 피란했다. 그때만 해도 지척에 있는 고향 땅을 이처럼 오랫동안 밟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67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 할아버지는 소감을 묻자 잠시 뜸을 들이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짧은 말 안에는 남북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평화 통일에 대한 바람이 잔뜩 담겼다.

할아버지는 "우리 실향민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큽니다. 오늘 나눈 대화들이 다 잘 돼서 실제 남북교류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북도민회 강화지회장을 맡은 그는 회담 이후 강화가 남북 교류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할아버지는 "강화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지정학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실향민들은 그러나 이번에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사이사이 도발을 감행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다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다.

연평도에서 불과 30㎞ 떨어진 섬 용매도 출신 실향민 차학원(77·인천 옹진군) 할아버지는 "이북은 100% 믿지 못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70~80%는 믿음이 간다"며 "과거 2차례 회담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고향 용매도에 할머니와 고모를 두고 왔다. 할아버지는 "이번에야말로 고향에 한 번 가보려나 모르겠다"며 "할머니야 진즉에 돌아가셨겠지만, 회담을 보면서 고향이 정말 그리웠다"고 말했다.

차 할아버지처럼 실향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땅 방문이다. 분단이 60년 넘게 이어지면서 실향민 1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의 숫자는 이산가족 등록 현황을 통해 어림잡아 볼 수 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의 이산가족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31일 기준 남한의 이산가족 신청자는 5만7천920명이다.

경기도 거주자가 1만7천257명(29.8%)으로 가장 많고, 서울이 1만5천737명(27.2%), 인천 4천794명(8.3%) 순이다. 이 중 64.2%가 80세 이상의 고령이다.

1988년 이산가족 신청자를 집계한 이래 벌써 7만3천611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실향민 마을인 경기도 화성시 배양3동에 살고 있는 연백 출신 이범수(84)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신청도 했지만, 아직까지 형제들의 생사 여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정상회담으로 자유롭게 북한 땅을 왕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민재·배재흥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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