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폭등, 주식 광풍과 함께 불안정 자산시대의 한 축엔 가상자산 투자 열풍도 있다.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개설된 계좌 수만 지난해 상반기 기준 550만명에 달하는데, '넘사벽'이 돼버린 부동산값에 좌절한 2030세대가 빠져들기 시작하더니, 중장년층까지 투자에 가세한 형국이다.이 덕에 가상자산 거래금액은 이미 코스피 거래대금의 2배를 뛰어넘은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이 시장은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High Risk)'가 분명한데도 날이 갈수록 급성장 중이다.이에 정부도 가상자산사업자 신고·허가제를 통해 감시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까지 투자자와 코인 상장사를 보호할 안전장치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다. 혼란한 틈을 타 개미 투자자들을 노린 코인 범죄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경인일보는 '욘사마 코인'으로 불린 퀸비컴퍼니의 상장과 몰락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의 허점과 규제 미비로 인한 피해를 낱낱이 파헤쳤다. → 편집자 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2위인 '빗썸'에 상장한 이른바 '배용준 코인'이 디지털 쓰레기로 전락했다. 퀸비컴퍼니(Queenbee company·이하 퀸비)는 2020년 2월 가상자산사업자 빗썸코리아 거래소를 통해 코인 '퀸비(QBZ)'를 1QBZ당 거래가격 0.021달러(우리돈 약 25원)에 상장했다. 퀸비는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이사 배용준씨와 신세계 노브랜드, 허니버터칩 등 브랜드를 개발한 숙명여대 김기영 교수 등이 투자한 코인 'QBZ'를 가상화폐거래소에 상장하고 증권형 토큰으로 부동산, 저작권, 미술품 영화 제작 등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설계됐다.빗썸코리아도 8천만QBZ를 퀸비재단으로부터 넘겨받아 무상 배분하는 에어드롭(air drop) 이벤트를 진행하며 초기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불확실성 가득한 코인시장에 인지도, 신뢰도 높은 인사들이 참여한 퀸비의 출현은 투자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상장 첫날, 퀸비는 1QBZ당 25원에서 275원까지 변동률 1천100%를 기록했다. '욘사마 코인'이라는 유명세로 상장 3시간 만에 총 거래액이 690억원을 돌파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QBZ' 2020년 2월 거래소에 상장유명인 연관 주목, 마케팅도 활발25원 → 275원 크게 상승했지만… 하지만 욘사마 코인의 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퀸비측 주장에 따르면 2020년 3월25일과 4월3일, 23일 세 차례에 걸쳐 각각 3천300만여개, 1억4천700만여개, 4억9천800만여개 등 총 6억7천800만여개의 QBZ 코인이 비정상적으로 시장에 풀렸다. 해킹으로 인한 유출이 의심되는 이상거래였다. 정상적으로 거래됐다면 무상배분 이벤트물량인 8천만개와 퀸비 재단이 계획한 코인을 합해 총 3억개 가량의 코인만 거래돼야 했다. 퀸비는 첫 번째 비정상 물량이 유출된 이후 즉각 빗썸에 이상거래에 대해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6억7800만개 '유출의심 물량' 풀려입금 제한 끝에 작년 8월 상장폐지퀸비 "이상거래 방치" 빗썸에 소송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빗썸은 마지막 비정상 물량 유출 이후인 같은해 4월29일, 퀸비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투자유의종목에 지정되면 코인 투자 입금이 제한된다. 한마디로 신규투자가 불가능해진다. 퀸비는 결국 지난해 8월23일 거래지원 종료 통보를 받고 상장 폐지됐다. 가치 폭락을 겪은 퀸비는 금융위원회에 빗썸을 상대로 '가상자산거래소의 신고수리 및 허가결정에 대한 이의제기' 민원을 제기했다. 퀸비는 이상거래가 계속되는 동안 빗썸이 상황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또 상장 절차와 투자유의종목 지정, 상장폐지 등 일련의 과정에 거래소인 빗썸에 책임이 있다며 민형사상 소송 절차도 밟고 있다.이에 대해 빗썸 관계자는 "상장과 투자유의종목 지정, 상장폐지는 거래소의 고유 권한"이라며 "에어드롭 등 이벤트를 하고 남은 물량을 돌려줄 순 있다"고 해명했다. → 관련기사 3면 ([욘사마코인 '퀸비' 왜 쓰레기가 됐나·(1)] 몰락의 전말)/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지역자치부=김환기 부국장, 정치부=손성배, 경제산업부=김동필, 사회교육부=이시은 기자, 사진부=김도우 기자지난해 2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2위 빗썸에 상장한 퀸비컴퍼니의 코인 'QBZ'가 상장부터 거래종료까지 과정에서 빗썸 대주주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라이브센터. 2022.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욘사마 코인'인 퀸비의 상장폐지 사건을 두고 가상자산 업계는 빗썸 대주주가 개입한 '기획 탈취'를 의심하고 있다.유명인이 참여한 코인 재단을 거래소에 상장시킨 뒤 개인 투자자들이 모여 총 거래액이 커지면, 코인 시세를 조정하는 브로커가 매도해 다른 소액투자자와 코인 발행 재단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이 같은 방식은 주식시장의 작전 세력을 동원하는 주가 조작과 유사하나, 이를 주도한 세력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상장 직전의 수상한 계약 퀸비 사건에는 결말을 예측케 하는 전조가 있었다. 상장 전에 퀸비는 조세회피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법인 뉴컨센서스캐피탈(이하 NCC)과 계약을 맺었다. 빗썸코리아와 빗썸글로벌 등 가상자산 거래소에 퀸비를 상장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NCC는 현재 빗썸의 대주주 이정훈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전 이사회 의장과 연관된 싱가포르 소재 법인 비티에이치엠비(BTHMB)의 조세 포탈 목적 법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상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공언해 온 가상자산거래소가 공개적으론 상장료를 안 받는 대신, 조세회피처의 유령법인 의혹을 받는 NCC를 통해 우회적으로 상장료를 받았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게 가상자산 업계의 주장이다. '빗썸 패밀리' 등기이사와 계약가상자산거래소 상장 도움받아유령법인에 우회적 상장료 의심 상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퀸비는 2020년 1월말 NCC를 중국계 브로커를 통해 접했고, 그 시기 가상자산 전문가로 꼽히는 A씨와도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의 골자도 빗썸 상장을 위해 A씨가 퀸비에 금전적·전략적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A씨는 '빗썸 패밀리' 볼트러스트의 비상장 주식을 소유한 등기이사였고 2018년부터 지난달까지 매주 빗썸코리아 공식 위클리 리포트 작성 용역을 하던 회사 헥슬란트 대표였다.A씨는 퀸비를 대신해 NCC에 총 75만 유에스테더(USTD)를 대여 성격으로 대납한 인물이기도 하다. 퀸비는 A씨가 대가를 지불한 뒤 BTHMB로부터 송금을 잘 받았다는 회신을 받고 NCC와 BTHMB가 한 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퀸비는 NCC와 A씨를 제외하곤 상장 직전까지 빗썸과 직접 접촉한 적이 없다는 점도 상장 전 문제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A씨는 한동안 퀸비 재단의 코인 계정을 관리하는 권한인 '마스터키'까지 쥐고 있어서 상장 이후 퀸비 코인 물량이 비정상적으로 유출됐을 때 이를 방치했다는 책임도 있다고 주장한다.경인일보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A씨에게 문자와 전화 연락을 했으나 A씨는 공식 입장 등을 밝히지 않겠다고 답했다.감춰진 상장심사 기준가상자산 거래소 상장심사 기준은 빗썸만 최근 공개했을 뿐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다. 각 거래소가 정한 요건을 충족한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상장이다. 빗썸은 전문가로 구성된 암호화폐 상장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의와 검토를 통해 상장 심의를 한다고 안내하고, 실질적 심사기준으로 ▲비즈니스 영속성 ▲기술적 기반과 확장성 ▲시장성 등 3가지를 공표했다.퀸비 재단은 상장폐지까지의 과정에 거래소가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고 코인 발행사와의 신의성실의 원칙마저 깨버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인일보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퀸비가 빗썸에 비정상물량유출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공식문서에도 빗썸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대신, 재단 소유 계정은 상장 직후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에 따라 동결하고 투자유의종목 해지 시점에야 동결을 풀었다. 계정 관리 '마스터키' 쥐고 있어시세조정 브로커 매도로 날벼락 주식시장의 경우 기업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면 일정기간 동안 일정지분 이상을 가진 주주들의 거래를 제한해 개인(소액)투자자를 보호하는 보호예수제도가 있고, 선물시장 급등락에 따라 현물시장에 혼란이 빚어지면 매매호가 효력을 5분간 즉시 정지하는 사이드카(sidecar) 제도가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달리 시장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는 것이다.빗썸 관계자는 "퀸비에 대한 거래지원 종료는 재단(퀸비)이 사업을 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뒤 거래정지 이후 상장폐지를 한 것"이라며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와 대주주와의 관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 표·일지 참조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지역자치부=김환기 부국장, 정치부=손성배, 경제산업부=김동필, 사회교육부=이시은 기자, 사진부=김도우 기자지난해 2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2위 빗썸에 상장한 퀸비컴퍼니의 코인 'QBZ'가 상장부터 거래종료까지 과정에서 빗썸 대주주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라이브센터. 2022.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6남매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다들 아이를 안 낳고 싶어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낳으셨어요?"수원시 정자동의 한 아파트에는 6남매 가족이 산다. 정민경(45)씨는 고등학교 1학년 첫째부터 6살 막내에 이르기까지 청소년과 미취학 아동을 동시에 돌보고 있는 엄마다. 지난 20일 아이 대부분이 학교와 유치원을 간 틈을 타 다둥이네 집에서 민경씨를 만날 수 있었다. 민경씨는 어릴적 7남매와 함께 컸다. 그는 시끌벅적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안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남편과 자녀 계획을 세울 때부터 다둥이 가족이 되길 바랐다. 우문(愚問)에 대한 그의 답변은 결국 '행복'이었다.민경씨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구김살 없이 자란 아이들이 서로 양보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그의 낙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자신의 삶과 반대로 살아가라고 말한다."후회는 없지만, 아이한테는 그래요. 엄마처럼 많이 낳지 말라고. 아이들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는 게 힘드니까…."수원 '다둥이가정' 정민경씨네후회없지만 '현실 부담' 이야기아이 많아… 집주인 계약 꺼려 결국 현실적인 이야기로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민경씨 가족은 지난 2019년부터 수원시가 4자녀 이상 무주택가구에 지원하는 '다자녀 수원휴먼주택'에 살고 있다. 보증금과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부담하면 된다. 그전까진 방 2칸짜리 집에 살았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는 30만원이었다. '아이가 많다'는 이유로 살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집이 망가질까 염려해 임대차 계약을 꺼리는 집주인들이 많았어요. 시에서 집을 지원해 준 덕분에 주거 부담이 많이 줄었죠."민경씨는 주택 지원 이외에 받았던 다자녀 혜택 중 가장 좋았던 건 '견학 지원'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화성행궁에 갈 때 입장료를 할인받고, 주차요금을 적게 내는 게 6남매를 키우며 2번째로 좋았던 혜택이었다. 그의 답변을 듣고 있자니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매년 수십조원을 쓰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市 다자녀지원 주택 살아"입장료할인 최고 혜택" 답변에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나 의문 "6남매를 키워야 해서 지금은 남편만 전세 통근버스 운전기사로 일을 하는데, 맞벌이를 해야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아요. 6남매가 이동하려면 자동차가 반드시 있어야 하잖아요. 자가용이 재산에 잡히는 바람에 또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고요."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진 이 나라에서 6남매를 낳아 키우고 있는 민경씨도 육아·보육 정책의 효과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울 책임은 여전히 개인과 개별 가정의 몫으로 남아있었다."국가가 육아를 책임지겠다는 그 말보다 실천이 중요한 거 같아요. 매번 출산율이 낮아서 문제라고 말은 하는데, 돈과 교육, 격차, 차별 같은 문제로 아이 낳길 꺼리거나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6남매의 엄마 정민경(45)씨와 자녀들이 거실에 모여 카메라 앞에 섰다. 개구쟁이 막내는 쉼 없이 장난을 치고 의젓한 형 누나들은 동생들을 다그친다. '아이가 있어 행복한 우리 집', 육아가 아무리 어렵다 한들 6남매를 책임져온 민경씨는 후회가 없다. 육아의 책임은 나라에 있지 않다. 아이를 향한 책임과 행복은 부모와 구성원에 있다. 나라는 육아를 책임지는 부모와 구성원의 행복을 돕기 위한 장기적이고 견고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획취재팀6남매의 엄마 정민경(45)씨와 자녀들이 거실에 모여 카메라 앞에 섰다. 개구쟁이 막내는 쉼 없이 장난을 치고 의젓한 형 누나들은 동생들을 다그친다. '아이가 있어 행복한 우리 집', 육아가 아무리 어렵다 한들 6남매를 책임져온 민경씨는 후회가 없다. 육아의 책임은 나라에 있지 않다. 아이를 향한 책임과 행복은 부모와 구성원에 있다. 나라는 육아를 책임지는 부모와 구성원의 행복을 돕기 위한 장기적이고 견고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획취재팀
6남매를 키우고 있는 정민경(45)씨의 이야기는 결국 '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 편성한 재원은 2021년 기준 73조원가량이다. 여기에서 육아 지원 등 저출산 정책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예산만 약 46조원이다. 말 그대로 '억' 소리나는 규모다. 정부의 보육예산도 지난 20년 간 큰 폭으로 확대됐으나 같은 기간 출산율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 그래픽 참조그런데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은 이 많은 돈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늘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육아 관련 정책에 부모들의 욕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벽에 둘러싸인 육아 정책육아 정책의 기본적인 목표는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같은 현금성 지원을 통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거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촘촘한 보육 체계를 구축해 부모의 시간적 부담도 경감할 수 있다. 초저출산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현시점에선 국가가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는 다소 소극적인 접근보다,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먼저 발굴하는 적극적인 접근 방식도 필요하다.그러나 현실에선 갖가지 제도적 장벽 탓에 부모들의 육아 부담이 줄지 않고 있다. 민경씨 가족은 부부와 6남매를 더해 모두 8명이다. 자녀 수를 떠나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자동차는 꼭 필요한 이동수단이다. 다둥이 가족은 더욱 그렇다. 민경씨 가족의 경우 온 가족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 매번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자동차 때문에 민경씨 가족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에서 제외된다.현재 자동차를 보유한 다자녀 가구가 주거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원이 6인 이상 이거나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구로서, 배기량 2천500cc 미만 7인승 이상으로, 차령 10년 이상 또는 차량 가액이 500만원 미만인 자동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국산 RV차량을 보유한 민경씨 가족은 해당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 생계급여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별도 기준조차 없다. 소득·재산 기준에는 적합하더라도, 차량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민경씨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수원시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기초수급 차량기준'이 완화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6남매 민경씨네, 차량기준 못맞춰다자녀가구 주거급여 지원 못받아소득·재산 부합해도 '제도적 장벽'수원시, 작년이어 올해도 완화건의 시는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인 반면 낳은 자녀들을 잘 키우는 것 또한 저출산 해소를 위한 최대 관건'이라고 봤다.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이 여러 제약 때문에 실생활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수원시는 더 많은 다자녀 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상 생계·주거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차량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최근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생계급여에는 다자녀 가구가 적용받을 수 있는 차량 기준을 새로 만들었고, 주거급여의 경우 차량 가액을 기존 5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올리는 등 일부 기준을 완화했다.수원시 관계자는 "작년에도 정부에 비슷한 내용으로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예산이 맞물려 있고 기준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다자녀 가구들을 상담하다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인데,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기준 때문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정부는 나름의 목표와 기준을 세워 육아와 관련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민경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가지고 추진되는 정부의 정책은 현실 부모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2018~2022 육아정책 분석과 과제(Ⅲ)'는 부모 1천731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육아정책 수립 실태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설문에 참여한 부모들에게 '우리나라 육아 정책 의제에 육아 관련 사회적 이슈나 문제, 그리고 부모들의 욕구가 반영되고 있는지'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4명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했다. 반면 긍정적인 답변은 18.6%에 불과했다.마찬가지로 '정책이 의도하는 서비스 성과가 잘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엔 전체 응답자 중 40%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고, '어느 정도 적절하다'거나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16.8%에 그쳤다.결혼 전부터 결혼, 임신 전, 임신, 출산, 육아, 가족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예산을 들여 지원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다. 부모의 체감도가 이렇게 낮다는 건 정부가 저출산 관련 정책에 투입한 막대한 예산과는 무관하게 정책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이다.이 같은 결과를 정책의 방향성과 연결지어 분석하는 의견도 있다. 올해 육아 지원 등을 포함한 저출산 정책에 편성한 예산은 46조원가량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간접 지원'에 쓰인다. 고용, 교육과 관련한 예산까지 포함하면 간접 지원 비율은 60%를 넘는다. 결국 출산과 육아 등 부모들이 실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직접 지원'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이 편성된다. 이는 결국 부모들의 육아 정책 체감도 하락으로 이어진다.육아정책硏 설문 '정책 긍정적' 답변 18.6%뿐40%가 '의도한 서비스 성과 잘 이뤄지지 않아'올 저출산 예산 46조중 절반 이상 '간접 지원'실생활 필요한 '직접 지원' 적어 체감도 하락 육아정책연구소의 '2018~2022 육아정책 분석과 과제(Ⅲ)'에 따르면 2019년 부모들이 꼽은 '저출산정책에서 가장 성과를 보인 과제' 1순위는 '아동수당 도입 및 연령 확대'였다.아동수당에 불만족한 의견의 73.2%도 '현금 지원수준이 낮아서'였다. 상대적으로 직접 지원 예산의 비율이 적은 탓에 부모들의 선호도가 반영된 육아 지원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 김근진 부모교육연구팀장은 "저출산 정책에 들어가는 예산은 상당히 많지만, 절반 이상이 주거지원과 같은 간접 지원 예산이다 보니까 실제 출산과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 대한 직접 지원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라며 "저출산 예산 대비 부모들이 체감하는 효과가 낮아지는 데는 이런 측면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이어 김 팀장은 "아동수당은 2018년에 도입해서 점차 지급 대상 연령을 올렸다. 부모들의 평가가 좋은 지원 정책에 속하는 편인데, 금액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선 체감도가 낮다"며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등 양적 측면의 보육서비스는 확대되고 있으나 질적 측면에서 부모들이 만족할 만큼의 보육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13년 이전까지 영유아 전 계층 무상보육은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시혜적 차원 복지로 정부의 보육 지원이 이뤄지다 이후부터 '육아·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가 됐다.낳으면 길러주겠다는 국가의 약속에도 각 시·도의 출산율은 누가 먼저 '0'에 다다를지 시합이라도 하듯 바닥으로의 일방통행 레이스다.보건복지부와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국비기준 보육예산은 2000년 1천991억원에서 2020년 5조8천68억원으로 20년 동안 29.2배 증가했다. 미취학 자녀 1명을 기르는 데 1년에 1천만원이 든다고 단순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가 이 보육예산으로 1년에 키워낼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지난해 5천806만8천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와 비등하다.영유아 보육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자녀양육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보육예산은 지속 증가했다. 다가오는 2022년은 덜 낳고 덜 기르는 세태가 국가 예산에 반영된 보육예산 삭감의 원년이다. 정부는 다음 해 국비 기준 보육예산으로 올해 5조9천597억원 보다 1천515억원 줄어든 5조8천82억원을 책정했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와 인천시는 출산율 저하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에서 시작된 저출산 문화가 제반 환경이 유사한 경기·인천 지역으로 물밀듯이 넘어 들어 왔고,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과 집값 부담이 출산과 양육 욕구를 집어삼켰다.# 수도권의 서울화 현상경기도는 전통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곳이었다. 현재도 수도권 3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통계에서 전국 평균을 웃돈다. 최근 몇 년치 통계만 비교해선 의미가 없다. 문제는 속도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저출생시계'가 여타 광역지자체에 비해 너무 빨리 간다.2020년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0.878이다. 합계출산율이란 15~49세 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다. 연령별 출산율의 총합으로 신생아 수 증가의 척도로 사용한다.2000년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1.628명이었다. 여성 경기도민 2명이 아이를 3명 이상 낳았었다고 해석하면 된다.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20년 만에 0.750명이 하락했다. 이 시기 서울은 1.275명에서 0.642명으로 0.633명 하락했고 인천은 1.473명에서 0.829명으로 0.644명 떨어졌으므로 낙폭이 큰 곳은 단연 경기도였다.서울 따라가는 수도권 경기도 합계출산율은 전국평균 상회2000년 1.628→2020년 0.878명 급락서울·인천보다 '낙폭'이 더 크기도인접 대도시 저출산 문화 확산 분석만혼화·출산 인센티브의 감소 탓도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경기로 유입되는 인구가 없었다면 경기도는 성장하지 못했다. 같은 인구라도 아이를 키우는 젊은 가구의 소비 활동이 더 활발하다. 자체적인 인구 생산 능력이 떨어지면 당연히 교육서비스, 도매·소매 등 여러 서비스업의 성장과 고용에 음의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한국은행 경기본부가 2019년 펴낸 '경기지역의 출산율 급락 현상 분석: 원인과 파급효과'를 보면 저출생의 원인에는 문화적 요인이 있다. 이 논문을 작성한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정승기 전 한국은행 경기본부 경제조사팀 과장은 서울 등 인접 대도시의 저출산 문화가 경기도(인천시)로 확산했으며, 경기도의 출산율 급락현상은 만혼화에 따른 과도기적 효과, 출산 인센티브 감소의 결과 등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문제의 근원은 '집값'새도 알을 낳기 전에 둥지부터 짓는다. 마음 놓고 다리 뻗을 둥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저출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홀로 살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에게 아이 낳아 기르라는 구호는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유령'일 뿐이다.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통계시스템을 보면 올해 3/4분기 지역별 주택구입부담지수에서 경기도가 처음으로 100을 넘어섰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소득 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했을 때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수다. 지수가 높을수록 주택 구입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최신 주택구입부담지수에서 경기도는 102.2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은 73.5다. 억 소리 나는 집값의 서울은 182, 인천은 80.5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1년 3/4분기 경기, 인천,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각각 80.3, 66.9, 117.8이었다. '둥지 없는' 청년세대경기도 주택구입부담지수 102.2전국평균 73.5와 대조… 인천 80.5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도 높아보육예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자체 재정정보 취합 필수' 조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탓에 둥지 없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포기한 '요즘 것들'이라며 혀를 끌끌 찰 순 없다. 하준경 교수는 논문에서 '집값이 상승한 곳일수록 출산율 하락폭이 크다. 주거비가 높을수록 결혼이 쉽지 않고, 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수준이 높아지면 자녀(계획) 수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입증했다.하 교수는 저출산과 주택담보대출의 반비례 관계를 '집값 효과'라고 명명했다. 여기다 두 가지 지수를 더 끌어다 경기·인천의 저출산의 요인을 입증할 수 있다. 연간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Price to Income Ratio)과 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 비율(LIR·Loan to Income Ratio)이다.경기도는 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 비율이 2011년 7월에서 2021년 7월 10년 사이 1.34 오른 4.45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평균 3.69, 서울 4.33을 웃도는 수치다. 경기도민의 집값 부담이 타 수도권 지자체보다 심각하다는 실증적인 결과다.하 교수는 "주거비 부담이 저출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만큼 집값 안정 노력이 필요하다"며 "저출산은 먼 미래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당장 내수를 위축시키는 일이므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유럽 여러 나라는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예산을 늘리는 등 적극 대응해 추세를 반전시켰다. 우리도 늦기 전에 과감히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단순히 보육예산만 늘려선 안 된다. 지난해 12월 예산정책연구에 '지방정부 보육예산 분석' 논문을 낸 김현숙 숭실대 경제통상대학 경제학과 부교수와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의 제안이다.분산된 보육·아동사업 예산은 가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예산 규모와 내용을 파악해 효율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분담하기 어렵다. 내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들은 방만한 예산이 공모전과 의미 없는 위원회 회의 개최 비용으로 쓰이는 동안 정작 주인공인 우리의 아이들은 병들고 있다고 지적한다.김 교수는 "17개 광역지자체, 236개 기초지자체별 재정정보 취합이 필수"라며 "가칭 영유아 보육·교육재정센터를 설치해 시·군·구 단위 영유아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 분류 가능한 수준에서 각 지역의 재정자료를 일관되게 집계해야 새는 돈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꼭 2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좀 더 긴 호흡으로, 더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통 큰 기사'를 기획했습니다.한 달에 한 번, 2020년 1월 '판교 리얼리티'로 시작해 이번 '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까지 24편의 통 큰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 덕분에 한국편집상, 이달의 기자상, 이달의 편집상 등 굵직한 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습니다.이제 '통 큰 기사'라는 이름의 기획을 마무리 합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기획, 더 정성 가득한 콘텐츠로 독자들을 찾아뵙겠습니다.
서윤아(가명·32)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지난 2013년 결혼한 서씨는 슬하에 7살, 6살 연년생 남매를 뒀다. 그는 결혼생활 5년 만인 2018년 남편과 돈 문제로 갈등을 겪다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에겐 사채 빚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서씨는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만 했다. 서씨 가족의 보금자리는 원룸이었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엄마만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자녀들까지 돌봐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빠졌다.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서씨 가족은 원룸에서조차 쫓겨날 처지에 내몰렸다. 서씨, 흉기로 6살 아들에 상처살인미수 기소 1심서 징역 4년 서씨는 6살 아들의 가슴을 흉기로 찌른 범죄자다. 그는 지난 2월 두 아이와 함께 오산시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에게는 여행이라고 말해뒀지만, 실상은 자신과 아이들의 생을 마감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는 숨바꼭질을 하자며 아들을 화장실로 유인했고, 미리 준비한 흉기로 아들의 가슴을 두 차례 찔렀다. 정신을 잃은 아들을 침대에 눕힌 서씨는 곧이어 자신의 복부를 흉기로 한 차례 찌른 뒤에 쓰러졌다. 사건을 목격한 딸이 모텔 관리인을 방에 데리고 왔고, 관리인은 즉시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모자는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홀로 아이 키우려 노력했지만한순간에 잔인한 엄마로 전락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서씨는 지난 5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이규영)는 판결문을 통해 서씨의 범행을 강하게 꾸짖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사건과 같은 유형의 범죄에 관하여 '부모가 오죽했으면'이라는 온정적인 시각으로 '동반자살'로 미화해왔으나, 이 사건과 같은 범죄는 자녀를 보호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부모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과 자신이 죽은 후의 자녀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 단정하고 책임진다는 잘못된 판단만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자녀를 살해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적었다.재판부의 판단처럼 서씨의 범행은 '선의로 포장된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중범죄다. 그런데 법원은 서씨가 처했던 상황을 양형에 참작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2018년경부터 남편과 별거하며 홀로 두 자녀를 양육하다가 월세를 내지 못해 살던 원룸에서 쫓겨날 처지에 몰리자 생활고와 양육의 부담, 언니들과의 갈등 등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 점, 평소 피해 아동을 학대한 정황이 없으며 앞으로 피해 아동을 잘 돌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열거했다.선의 포장 극단적 아동학대…국가·지자체 아무 책임 없을까 서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진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사실상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었다. 범행 이후에는 자식에게 흉기를 든 비정한 엄마가 됐다. 서씨를 설명하는 표현을 범행 이전과 이후로 분리한 이유는 각각의 상황에 인과관계를 부여하지 않기 위함이다. 서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더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하는 부모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범행 이전 서씨의 삶도 부정하긴 어렵다. 서씨가 수년간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고꾸라진 출산율을 높이려고 정부나 지자체는 늘 '육아는 국가 책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서씨 가족의 비극에도 국가 책임이 일부 있진 않을까. 이런 의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30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인 김철민(가명) 형사는 서윤아(가명·32)씨 가족의 비극이 벌어진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숱한 죽음을 눈앞에서 본 그에게도 견디기 힘든 사건 현장이 있다. 아이가 피해자인 경우다.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김 형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모텔 객실 침대에 바르게 누워있던 서씨의 6살 아들이었다. 아이의 창백한 얼굴, 그는 아이의 숨이 이미 멎은 줄만 알았다. 객실 화장실에는 아이의 가슴에 이어 자기 몸을 찌른 서씨가 혼절해 있었다. 타일 바닥에는 범행에 쓰인 날 길이 12㎝ 과도가 떨어져 있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서씨의 딸은 강한 정신적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연거푸 흘렸다. 당시의 참혹한 광경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김 형사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며 팔뚝을 쓸어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서씨의 아들은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되살렸다. 서씨 역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평범했던 가족에게 닥친 비극 사건 조사를 시작한 오산경찰서 형사들은 범행이 발생한 2월28일 오후 2시45분 이전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전날 서씨와 남매는 서울시 종로구에서 전철을 타고 1호선 오산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왔다. 모텔에 입실한 뒤 이 가족은 맞은편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주전부리를 샀다. 이러한 장면은 건물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CCTV에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찍혔다. 아이들이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은 없었다.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이 가족이 예정한 마지막 여행 출발 이틀 전 친정집 근처 상점에서 구입했다. 서씨는 남편과 경제적인 문제로 사이가 나빠진 뒤 본래 부부의 거주지였던 수원시를 떠나 서울 친정집에 머물렀다. 부모와 자매들 간 갈등을 겪곤 원룸을 따로 얻어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한 정황에 비춰 봤을 때, 서씨의 범행은 우발적으로 빚어진 참극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서씨가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과 어린 아들의 가슴에 낸 상처였다.엄마 서씨,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별거원룸 생활… 빚 갚으며 힘겹게 남매 양육형편 어려웠지만… 학대전과는 없어 서씨는 남편을 20대 초반에 만났다.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을 낳아 함께 양육하다 3년 전부터 둘 사이가 틀어졌다. 별거 중에도 부부는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을 정도의 관계는 유지했다고 한다.이들이 별거를 하게 된 이유는 돈 문제 때문이었다. 젊은 부부가 사채 빚을 갚으며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씨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학습지 교사, 소일거리 등을 하며 월 150만~180만원을 받아 별거 중에 남매를 양육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당시 서씨 수중엔 카드만 있었을 뿐 현금은 한 푼도 없었다.친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서씨 가족의 생활고는 점점 심각해졌다. 막판에는 월세를 내지 못해 살던 원룸에서 쫓겨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서씨는 평소 아이들을 굶기거나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풀지 않았다.김 형사는 "부부 모두 아동학대 전과는 없다. 남매가 밥을 굶은 적도 없었다"며 "남매 엄마가 휴대전화 숙박 앱으로 예약을 하고 오산으로 온 정황으로 봤을 때, 애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온 것으로 보였다. 조사를 받을 당시에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육아부담 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법률혼 유지 탓 한모부가정 혜택도 제외극단선택 결심 서씨, 아이들과 가족여행 안타까운 점은 서씨가 육아 부담을 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법률혼 관계는 유지했기에 한부모 가정에 주어지는 여러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 가족은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서씨는 계획을 전부 실행할 만큼 치밀하지도, 모질지도 못했다. 서씨의 숨바꼭질 놀이의 피해자는 아들뿐이었다. 딸에겐 침대 위에서 TV를 보고 있으라고 한 뒤 화장실로 아들을 데려와 샤워 가운에 붙은 허리끈으로 눈을 가리고 흉기를 들었다. 경찰 조사에서 서씨는 애당초 딸만 이 세상에 남겨둘 계획은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심한 가해를 하고만 엄마가 죄책감에 젖어든 나머지 딸은 그대로 두고 자신의 몸에 칼을 겨눴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김 형사는 "아들을 해하고 난 뒤에 딸까지 어떻게 할 정신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멘털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서씨의 범행은 아이러니하게 그의 가족을 다시 모이게 만들었다. 서씨는 전치 4주 진단을 받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주치의 안내에 따라 10일 만에 퇴원했다. 서씨의 남편은 아들과 아내가 있는 병원을 오가며 간병에 매달렸고, 먼저 퇴원한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걱정해 본래 가족이 모여 살던 수원 자택으로 데려갔다.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퇴원해 남편 집에 머무르고 있던 서씨를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 서씨가 유치장에 있던 사흘 간 경찰은 병원에 두 번이나 동행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어서 의료진이 상주하는 구치소행(검찰 송치)을 서둘렀다는 전언이다.서씨의 자녀들은 현재 외조부모가 직접 보호하며 키우고 있다. 경찰은 애초에 서씨 남매가 받은 충격을 염두에 두고 복지센터 등을 통해 이들이 지낼 거처를 알아보았으나 남매는 외조부모와 지내길 희망했다고 한다. 아들 해 하고 자해… 죄책감에 딸은 무사아이들, 외조부모와 함께 지내길 희망피해자인 남편도 법정서 아내 선처 호소 지난 3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서씨는 수원지법 형사13부가 맡은 1차 공판이 열리기 2주 전 본인이 직접 작성한 의견서와 정상관계진술서를 재판부에 냈다. 정상관계진술서는 피고인의 구체적인 사정과 생활환경 등을 담아 법원에 기소된 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를 기록하는 문서다.서씨는 1심 선고 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다. 서씨 사건의 1심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은 삶이 힘들었다고 했다. 부부가 경제적으로 힘들게 아이들을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거기다가 친정에서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원룸에 살다 결국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법정에서 서씨의 남편도 재판부에 용서를 구했다. 엄밀히 따지면 서씨 남편은 피해자인 아들과 함께 피고인이 된 아내의 반대쪽에 선 피해당사자였지만, 본인 역시 아내의 범행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서씨 남편은 "아내의 범행에 대해 법원의 선처를 요구한다"며 "다시 우리 부부가 남매를 올바르게 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법적 책임을 다한 어느 시점에 서씨는 다시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서씨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들은 심장 안에 비정상적인 혈액 주머니(혈심낭)가 생겨 죽을 고비를 넘겼고, 딸은 말을 잃었다.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이들과 서씨의 관계가 범행 이전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씨의 충분한 반성과 노력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의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치유하고, 아이들이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국가와 사회의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서씨, 출소후 자녀와 관계회복은 불투명구치소 수감중 취재진에 보내온 편지"가족들에게 상처 줘서 죄송한 마음…" 취재진은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씨에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며칠 뒤 서씨는 취재진에게 짤막한 답장을 보내왔다."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기자님께 편지가 올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편지를 4~5번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결론은 모든 이야기를 들려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사연은 익명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상처 줘서 죄송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께도 후회하는 일 안 생기도록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1년 12월13일."/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윤아(가명•32)씨가 취재진에게 보낸 편지. 서씨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을 가족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전했다. /기획취재팀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만 없는 게 아니다. 아이를 위한 도시도 없다. 어둠 속에 방치된 아이는 드러나지 않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양육의 기본적인 책임은 1차로 보호자에게 있다.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양육과 치료·교육을 소홀히 하면 형법,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벌금을 내거나 징역을 살아야 한다.1차적인 책임을 보호자에게 지우면서도 대한민국 법은 보호자에게 양육 책임을 전적으로 지우진 않는다. 아동복지법의 모법(母法)으로 1961년 12월 제정된 '아동복리법(현 아동복지법)'은 구청장·시장·군수에게 보호해야 할 아동이나 임산부를 발견하면 광역시·도 지자체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60년 전부터 이 법은 시·읍·면엔 아동위원을 두고 관할구역 내 아동의 생활상태나 가정환경을 상세히 파악해 필요한 원조와 지도를 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녀 양육 오가작통(五家作統)제'로 작동했다.아동을 보호하는 법은 광범위하고 촘촘하다. 하지만 아동 양육의 기본적인 책임을 다할 수 없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보호자와 그 가정을 보호하는 체계는 헐겁다.경인일보는 2019년부터 2021년 12월 최근까지 수원지법과 의정부지법, 인천지법 본·지원에서 진행한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 가운데 형이 확정된 형사재판 판결문 60건을 입수해 전수 분석했다. 이 중 보호자로서 아동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와 양육을 소홀히 한 유기·방임 사범 사건 7건을 추렸다.# 집에 버려진 아이들홀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 자녀를 양육하면서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인천지법 2021고단2206). 친아버지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 미웠다(의정부지법 2021노62).이혼 후 홀로 7살 난 아들을 양육하며 생계를 유지했다(인천지법 부천지원 2020고단3679). 방 청소를 안 한다(수원지법 성남지원 2020고단2177).남편이 생활비를 안 줘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잘 때 일 하러 나갔다(수원지법 2020고단1549). 전 남편이 산업재해 사고를 당해 입원치료 중이라 혼자 자녀들을 양육하기 어려웠다(의정부지법 2019고단4795).남편과 이혼한 뒤 친정부모의 도움으로 자녀들을 어렵게 양육하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빠졌다(수원지법 2018고단6795). 판결문 7건에 적힌 보호자들의 의무 방기 사유다.집에 버려진 아이들의 목소리는 판결문에 담겨 있지 않다. 보호자의 방임으로 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을 집에 두고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보호자의 변(辯)은 피고인 자격으로 법정에 선 보호자들의 최후진술을 축약해 문장으로 남았다.'홀로 ADHD자녀 양육 정신적·경제적 어려움''남편 생활비 주지않아'… '친아빠 잘 안 찾아와'아이 집에 두고 일하러 나가야했던 보호자들의 변 숱한 밤, 아이들을 재워두고 문밖을 나서야만 했던 아동복지법 위반 사범들에게 대한민국과 경기도·인천시, 지역공동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낳으래서 낳았더니 영유아 공보육 지원은 아파트 청약당첨만큼이나 어려웠고, 법률혼 관계가 깨지지 않으면 한부모 가정에 주어지는 현금성 양육 복지 지원에서도 제외됐다.오산시에서 8살 난 아들,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살았던 진달래(가명)씨의 사연을 보자. 달래씨는 남매의 112 신고로 아동복지법 위반 사범 낙인이 찍혔다. 남편은 따로 나가 살면서 홀로 남매를 키우는 달래씨에게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았다. 자녀 양육과 생계 모두 달래씨 몫이었다. 아이들이 잠드는 밤 8~10시 사이에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러 나가 이르면 이튿날 오전 5시, 늦으면 11시께 귀가했다.판결문에 드러난 달래씨의 '외출 일지'를 보면 2019년 6월부터 9월까지 여덟 차례 어린 남매를 집에 두고 거리로 나섰다. 달래씨는 법정에서 "집을 비우게 되면 음식을 미리 챙겨놓고 아이들의 기본적인 보호와 양육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아동복지법이 금지하는 방임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아이들이 잠드는 밤마다 외출한 노래방 도우미집 비우게 되면 음식 준비 항변했지만 '유죄' 당시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1단독 최혜승 판사는 출동 당시 집안 상황과 아동복지법 위반 피해자인 달래씨의 자녀들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달래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40시간 동안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도 수강해야 한다. 최 판사는 "아이들이 받은 불안감과 상처가 크다. 다만 초범인 점,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보살피겠다고 다짐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조아라(가명)씨는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7살 아들과 단둘이 장기투숙했다. 2018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아들을 방 안에 홀로 두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쓰레기를 쌓아두고 치우지 않아 악취가 나는 환경에서 키운 죄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처벌은 피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2단독 서호원 판사는 이혼 후 홀로 양육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점, 개선 가능성 등을 참작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내버려둬도 되는 아이는 없다안타깝다. 법관이 작성한 판결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박민 판사는 수원시 영통구의 8살 남자 어린이와 7살 여자 어린이의 어머니 박지혜(가명)씨의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사건 판결문에 안타깝다는 감정을 나타내는 수식어구를 썼다.박씨는 저장강박증 '호더스 증후군(hoarders syndrom)'을 앓고 있었다. 호더스 증후군은 온갖 물건과 심지어 쓰레기까지 집 안에 쌓아두고 이 물건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락함을 느끼는 질환이다. 행정복지센터의 담당 공무원들이 박씨와 남매의 주거지에서 들어낸 생활 폐기물 쓰레기는 족히 1.5t 포터 트럭 4대 분량으로 5t에 달했다.남매 중 둘째인 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결한 생활 탓에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를 가는 시기에 충치가 생겼고, 두 눈이 정렬되지 않는 사시 질환이 있었다. 저장강박증 앓는 엄마 쓰레기까지 집안에 쌓아불결한 생활 탓에 충치가 생기고 사시 질환까지 남편과 이혼하고 친정 부모의 도움으로 겨우 남매를 양육하면서도 매월 급여가 나오는 날은 집 근처 중국음식점에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 주문해 먹였다. 퉁퉁 불은 자장면을 먹이고 싶지 않아 음식점 주인에게 신속배달을 간곡히 요청하는 어머니였다.법원은 지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120시간 수강과 3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하면서도 가여운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했다. 징역 6월은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최하한이다.박 판사는 "피고인이 자녀들을 불결한 주거 환경에 그대로 방치하고, 각종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도 받게 하지 않아 친권자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렸으므로 죄가 가볍지 않다"고 짚었다.다만 "전 남편과 이혼하고 어렵게 자녀를 양육하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빠져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한 차례 다른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 이외에는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 피고인에게 다소나마 유리하거나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중학생 첫째·둘째 아들과 초등생 막내아들을 두고 몰래 이사 간 한부모 가정 어머니는 '독박 양육이 어려웠으리라'는 법원의 따뜻한 판결문을 받아들었다. 의정부지법 형사6단독 이인경 판사는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된 정이슬(가명)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40시간, 3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이 판사는 판결문에 "전 남편이 4년 전 산업재해사고를 당하고 입원 치료를 받느라 피고인이 혼자 자녀 3명을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이 넉넉히 짐작된다"며 "반복된 방임으로 피해 아동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법원은 아동 양육의 책임을 저버린 보호자 피고인들을 꾸짖을 뿐 '아이 낳아 잘 기르라'는 정부의 출산 독려 정책을 비판하진 않는다. 대신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는 우리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화두를 판결을 통해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사법부는 판결 통해 사회 함께 양육 화두 던져최소한의 생활 수준·돌봄 공백 개선은 과제로 학대 사망 사건은 전체 아동학대 사건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99%는 양상이 다 달라 접근하기 어려운 게 양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 피해 사건이다. 보여주기식 예방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 수준과 돌봄의 공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아동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의 일관된 주장이다.김예원 변호사는 "아동 사건은 지원 체계가 대단히 분절적이고 쪼개져 있다. 개개의 지원 체계를 들여다보면 중복된 주체들이 중복된 권한을 가지고 서로에게 떠밀기를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제도가 한 사람의 인성, 자기 결정까지 통제할 순 없지만, 그 당사자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정책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사진 : 김금보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클립아트코리아
법조인(검사, 변호사, 판사)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전국 만 19세 이상 시민을 표본으로 할 때 14.2%에 불과하다. 검사(2천292명)와 변호사(2만3천417명·지난해 기준)보다 법관이 상대적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판사를 직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국민은 약 8% 뿐이라는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와 남은영 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있다.법원조직법과 대법원규칙 제2966호 '각급 법원에 배치할 판사의 수에 관한 규칙'을 보면 대한민국 법관 수는 3천214명이다. 판사 정원은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약칭: 판사정원법)으로 정한다. 2014년 12월31일 일부 개정 시행한 뒤 현재까지 정원을 바꾸지 못했다.개정 시행 당시인 2014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는 5천132만7천916명. 법관은 전 국민의 0.0055%에 불과하다. 판사정원법은 1963년 12월 하급법원판사정원법을 폐지하고 제정·시행했다. 당시 판사 정원은 376명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3년 대한민국 등록 인구수는 2천726만1천747명으로 법관은 이 중 0.0013%를 차지했다. 증원은 꾸준히 이뤄졌지만, 복잡·다원화한 현대사회에서 법관의 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서울은 '법관특별시'시민 1천만 시대가 깨진 오늘날 서울에 지방법원장은 5명이다. 1천400만 인구를 눈앞에 둔 경기도의 지방법원장은 둘 뿐이다. 서울엔 동서남북으로 지방법원이 있고,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와 서울정부종합청사 소재지인 중구와 종로구,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동작구 등 6개 자치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까지 뒀다.5개 지방법원에 더해 회생·행정·가정법원 등 3개 특수법원이 기능한다. 총 8개 하급법원의 법관 수는 총 851명이다. 서울고법에서 근무하는 법관을 더하면 1천47명이다. 전체 법관의 32.57%가 서울 소재 법원에서 근무한다.서울특별시가 아니라 '법관특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관의 서울 밀집 현상이 심화하는 와중에 서울시 인구는 30년 전인 1992년 1천93만5천230명으로 최고점을 찍고, 2021년 10월 953만2천428명으로 지속 감소했다. 인구 1천만명 미만 서울 지방법원장 5명1400만명 눈앞에 둔 경기도에는 2명뿐전체 법관의 32.5% 1047명이 서울에 근무 경기도·인천광역시 관할 지방법원 본원은 수원지법·의정부지법·인천지법 등 3곳이고 수원가정법원과 인천가정법원이 있으며 각 지방법원 별로 5개(성남·안산·안양·평택·여주), 1개(고양), 1개(부천)씩 지원을 뒀다. 경기·인천 관할 하급법원에서 근무하는 법관의 수는 수원지방·가정법원 본·지원 359명, 의정부지법 본·지원 152명, 인천지방·가정법원 본·지원 192명 등 703명이다. 경기도에 수원고등법원 법관 46명을 더하면 557명, 경인지역 전체 법관의 수는 749명이다.서울은 인구 9천104.5명 당 법관 1명이 있다. 경기는 2만4천326.0명, 인천은 1만5천338.6명 당 1명에 불과하다. 가파르게 증가한 인구수와 비서울로의 정치·사회·문화·경제 분권을 특히 사법부가 대응하지 못한 셈이다.상황이 이런데도 사법부의 시선이 비서울을 향할 기미가 없다. 서울의 법관 인구 밀도는 빽빽한데, 비서울 법관은 수만명 중 1명이다. 게다가 법관들은 비서울 발령을 받아도 서울중앙지법 관할에 자택을 그대로 두고 근무지에선 셋방살이를 한다. 길면 5년, 짧으면 2년 안에 서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서울과 경기인천의 고법부장급 법관 수 차이는 사법부의 '지역 홀대'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지방법원장은 동급이다. 서울고법 부장을 하다 지방법원장을 한 뒤 다시 돌아가 고법 부장을 한다.서울고등법원엔 '지방법원장급' 판사가 60명 있다. 경기도청 소재지 수원시와 100만 도시 용인, 신도시 개발로 팽창하는 화성시와 오산시 340만 인구를 관할하는 수원지법의 고법부장급은 법원장이 유일하다.지난 2019년 3월 수원고등법원이 개원한 뒤 경기도의 고법 시대 3년차에 접어든 올해 870만 경기남부 지역민의 고법부장급 법관은 고법 부장판사 15명에 수원지방법원장까지 총 16명뿐이다.장성근 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방분권을 꽃피우고 권력의 분산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며 "서울에 쏠려 있는 법관과 서울 위주의 법조 산업과 서비스는 지역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성남·안산·고양 등 지원 본원 승격 '희망'300만 인천시민 상소심 원정 설움은 여전 경기남부 지역민들은 수원고법 개원으로 서울 서초동 원정 상소심의 설움을 씻어냈으나 성남·안산·안양·평택·여주 등 5개 지원 중 토지관할 인구 100만명 이상 지원의 본원 승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경기북부의 의정부지법 고양지원도 마찬가지다. 고양지원은 남북통일을 대비해 통일특별법원 설치 주장도 병행하고 있다. 의정부지법은 오는 2022년 3월1일 남양주지원을 개원한다. 인천지법은 2025년 3월1일 북부지원 설치를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300만 인천 지역민의 상소심 원정 설움은 기약 없이 이어진다.법원행정처 기획운영담당관실 관계자는 "법원 설치 및 승격 문제는 단순히 인구수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할구역의 인구·면적 및 인구 추이, 타 지원과의 비교, 사법 접근성 비교, 청사사정, 형평성 등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분 등 제반 사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질 저하로 이어진 비서울 사법서비스사법부의 비서울 외면은 법관의 판단 유보와 재판 지연으로 지역민에게 제공하는 사법 서비스의 양과 질 모두의 저하로 이어진다.형사 사건 피해자들은 검찰청의 담당 검사가 바뀌면 가슴을 치고,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장이 바뀌면 땅을 친다. 형사 공판에서 재판장이 아닌 합의부 배석 판사만 바뀌어도 공판절차를 갱신한다.공판절차 갱신은 이미 진행된 절차를 일단 무시하고 다시 진술거부권 고지, 공소장 낭독 혹은 공소사실 요지 진술 등을 하는 형사소송규칙이다. 한시가 급한 피해자들은 검사가 공소장을 다시 읽을 때, 한숨을 푹푹 쉰다. 수개월 간 진행한 재판이 도돌이표를 만나 처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 시점이 되면 판사들은 두 개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후임 판사에게 사건들을 넘기고 떠나거나 밤낮없이 판결서를 작성하고 재판을 열어 미제 없이 새 임무를 받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법관에겐 꺼림칙할 이유가 없다.하지만 재판 당사자는 일부러 소송을 지연할 의도가 없다면, 법정에 나서는 일이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전세 보증금 사기 사건' 피해자 권모(35)씨는 "신혼집을 장만하려고 묶어 둔 전세 보증금을 빼앗아간 집주인이 1년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끝내 보석으로 풀려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도 화가 나는데, 재판장이 바뀌고 아예 처음부터 재판이 다시 진행되는 것 같아 속이 터진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재판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속한 재판을 통해 보다 빠르게 소송 절차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경기·인천 형사피고인 6만9천명 서울보다 많아수원지법은 민사본안·형사 장기미제 상위권법관 '워라밸' 문제… 국회 판사증원법 내놔 대법원이 지난 9월 공개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경기·인천에서 형사소송을 치른 피고인은 구속 5천25명, 불구속 6만4천46명 등 총 6만9천71명이다. 서울은 구속 4천569명, 불구속 4만2천22명 등 4만6천591명으로 경기·인천의 67.45% 수준이다.경기·인천엔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2년을 넘긴 장기 미제 사건도 다수다. 서울중앙지법을 제외하고 수원지법 본원만 민사본안 사건 369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인천지법 본원도 1건 차이로 뒤를 이었다. 수원지법은 형사사건 장기 미제 역시 2년 초과 불구속 사건에서 145건으로 서울동·서·남·북 지방법원을 모두 앞질렀다.법관들은 공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주창한다. 특히 수원지법 법관들은 전국 법원 최초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업무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적정 선고 건수를 제시했다.국회는 '판사증원법'을 내놨다. 형사재판과 민사 소액사건 담당 판사를 현행보다 2배까지 점진적으로 늘리기 위한 판사정원법 개정안 발의에 여당 의원 30명이 이름을 올렸다.이탄희(용인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관 정원을 3천214명에서 4천214명으로 점진적으로 증원하되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에 걸쳐 각각 200명을 증원하자는 법안"이라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포괄적인 중·장기 법관 증원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
유쾌한 일로 법원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원치 않는 송사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법원을 방문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다. 재판부가 제아무리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받아본 절반은 법원의 판단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승소의 기쁨과 패소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곳이 법원이다. 재판 결과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은 법원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재판 과정 혹은 사법 절차에서 불편함을 겪진 않았는지 살피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건 법원의 역할이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일로 법원을 찾은 국민들이 법원의 불친절까지 감수하며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법원이 관심만 가진다면 사법행정을 경험하는 국민들의 편의로 이어질 수 있는 일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법원에도 적극행정이 필요한 이유다.매년 1천억원씩 국고로 귀속되는 공탁금법원에는 공탁이라는 제도가 있다. 법원은 이 제도를 '공탁자가 법령에 규정된 원인에 따라 금전·유가증권·그 밖의 물품을 국가기관인 공탁소에 맡기고, 피공탁자 등 일정한 자가 공탁물을 수령함으로써 법령에서 정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빚을 진 채무자가 돈을 갚으려고 할 때, 채권자가 의도적으로 돈을 받지 않거나 채권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채무자는 해당 금액을 법원에 공탁함으로써 채무를 대신할 수 있다. 찾아가지 않은 공탁금, 15년뒤 국가소유작년 수원지법 88억·인천지법 49억 달해국감서 "우편안내·신문광고 그쳐선 안돼" 이처럼 공탁은 돈과 관련한 사인 간의 갈등을 줄이는 걸 돕는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성격의 제도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 가지 흠결이 있다. 15년이 지난 공탁 사건의 공탁금은 국고로 귀속되는데, 주인을 찾지 못하고 국고로 귀속된 돈이 연간 1천억원 이상이라는 것이다. 경인지역에 국한하면 지난해 수원지방법원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국고 귀속된 공탁금 총액은 각각 88억여원과 52억여원이다. 인천지방법원은 49억여원이 국고로 들어갔다. 공탁금의 국고 귀속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고로 들어가는 공탁금의 액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면 법원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영배(민·서울성북갑) 의원은 "공탁금 주인찾기가 '선택적'인 안내문의 우편 송달, 신문광고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도 돈을 찾아가지 않는 당사자에게 안내문을 발송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공탁금 출급·회수청구 안내문의 송달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송달 방법 변경 등 안내문 발송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내년부터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누구의 편익일까소송에서 졌는데, 패소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당사자는 해당 판결을 납득할 수 있을까. 현행법상 소가 3천만원 이하 민사사건은 소액사건심판법이 정한 별도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다. 사건 자체가 크지 않으니 재판 과정을 간소화해 신속하게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도 법의 빠른 판단을 구하는 쪽이 낫기 때문에 법원과 소송 당사자 모두 '윈윈'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런데 소액사건심판법은 제11조의2에 '판결서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판결 이유를 따로 기재하지 않고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판결 이유를 분석해서 항소를 하든 대응 방법을 검토해야 하는데, 소송에서 왜 이겼고, 졌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물론 전체 민사사건 중 70%가량이 소액사건 재판으로 진행되는 탓에 소액사건 판사 개인이 짊어지는 과도한 업무량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판결 이유 등을 세세하게 쓰려면 신속한 소송이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발생한다. 왜 졌는지도 모르는 소송, 대응 어려워져구술설명·사무배분 등 재판의 질 높여야재판과정 '조서 의존' 법정녹음 필요성도 다만 판결 이유를 생략하는 대신 선고 시 판결 요지를 구술로 설명하도록 하는 방법을 활용하거나, 적정한 사무 배분으로 소액사건 재판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여러 개선 의견에는 법원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소액사건 재판 당사자들은 소액사건심판법의 존재 이유가 법원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법원의 법정녹음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법정에서 오가는 수많은 대화는 조서로 남긴다. 이 조서는 재판 과정을 요약해 기록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조서에만 의존하는 재판은 내용의 정확성이나 과정의 투명성 측면에서 불완전하다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법원은 앞선 2015년부터 전국 법원에서 법정녹음 제도를 본격 시행했으나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병원 수술실 안에도 곧 CCTV가 설치될 만큼 온 영역에서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정작 법원 밖에선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회 최기상(민·서울금천구) 의원 등은 소액사건에도 판결 이유를 기재하도록 한 소액사건심판법과 재판의 녹음·녹화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공탁금의 국고 귀속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고로 들어가는 공탁금의 액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면 법원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사진은 법원 입구 모습. 2021.11.2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