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유신 말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영면(永眠)했다. 김 전 대통령은 언제나 바른 길로만 가겠다며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정치 좌우명으로 평생 민주화의 길을 걸었고, 1993년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 우리나라에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어진 군부 정권에 마침표를 찍고 첫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고, 쇠말뚝뽑기·구조선총독부 철거와 같은 일제 강점기 잔재 청산작업을 시작했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 특히 1993년 8월 12일 전격적으로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독단적인 정책과 부패 비리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1997년 차남 김현철 씨가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체포되고 그해 12월 6·25 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집권 최대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로인해 김 전 대통령은 세계화와 금융개혁 그리고 정경유착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고,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받았던 국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온갖 영욕(榮辱)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용기있는 지도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현대사가 그렇듯, 김 전 대통령의 인생도 우리 역사만큼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1927년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1951년 한국 전쟁의 폐허속에서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자유당과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그는 항상 민주화에 헌신하며 한국 정치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단언컨대, 한국의 민주화는 아주 더디게 찾아 왔을 것이다.

6년전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김 전 대통령마저 서거하면서 이제 한국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 왔던 ‘양김(兩金)’ 시대도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치 원로가 모두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정치는 여·야가 진영논리에 갇혀 대립과 반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정치권도 구태를 벗어나 국민과 역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통렬하고, 뼈아프게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큰 길을 걸으며 문민시대의 문을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