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관(晞觀) 임근수(林根洙, 1916~1979)가 지난 1942년 월간종합잡지 '조광'(朝光)에 쓴 덕적도 관련 글이 계간 '작가들' 2015년 겨울호(통권 55호)에 실리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임근수가 '조광'에 투고한 글은 '덕적도' '다시 덕적도' 등 2편으로 각각 1942년 6월호와 7월호에 게재됐으며, 덕적도 언어와 민속 등이 기록돼 있다.
이 글을 발굴한 윤진현(연극평론가) 문학박사는 "이 글 이외에 1940년대 덕적도의 민요·풍속·언어 등을 조사한 자료는 없다"며 "이런 점에서 이 글은 수준 높은 덕적도 문화 답사기"라고 평가했다.
임근수의 글을 보면, 덕적도는 인천에서 똑딱선으로 5시간 정도 걸렸다. 민어와 조기가 산처럼 쌓일 정도로 많이 잡혔고, 새우잡이 배의 노 젓는 소리가 끊일 새 없는 복 받은 섬이었다.
경기·황해·전라·충청 등 각지에서 주민들이 몰려들어 언어가 섞이고 민속도 바뀌었다. 주민들은 자기들을 '고려 말 전후하여 정사(政事)에 실의(失意)한 정객(政客)들의 후예'라고 했다.
임근수는 "남자라고 이름 붙은 사람은 누구나 고기잡이에 나가고 여자는 하나도 빼지 않고 농경에 골몰하는 미풍,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며 남상선업녀상경운(男尙船業女尙耕耘)은 이 섬의 향약이라고 했다.
임근수는 덕적도 방언 가운데 '일곱멧겡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소개하고 있다. 일곱멧겡이는 여자 또는 여아를 뜻하는 덕적도 방언이다. 일곱멧겡이는 신부가 결혼 당일 신랑집에서 받아 친가로 보내는 선물의 이름으로, 덕적도 사람들은 여아를 출산하면 '일곱멧겡이'를 낳았다고 했다.
윤진현 박사는 "(임근수 글은) 1940년대 이후 덕적도 연구 성과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여아를 일곱멧겡이라고 호칭한다는 보고는 어떤 답사 보고서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정보"라고 했다.
또 "20대 청년(임근수)이 인천 섬과 주민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 "이라며 "임근수를 '인천 인물'로 호출해야 한다"고 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임근수는 서울대 신문학과 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학계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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