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제5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독서시위'를 벌인 이들이 있었다.
이날 오후 4시께 이른바 '청와대 포위 행진'의 마지노선 가운데 한 곳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 청와대와는 불과 400m 거리인 이곳에서 유혜림(31)씨와 동료 2명은 경찰이 집회 참가자가 청와대로 향하지 못하도록 설치한 '폴리스 라인'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각자 준비한 책을 읽었다.
시민들의 함성이나 휘날리는 눈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에 집중했다.
유혜림씨가 들고온 책은 독일의 역사학자 죙케 나이첼과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가 공동으로 쓴 '나치의 병사들'(2015)이다.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힌 독일 병사들의 대화를 도청해 기록한 문서를 발굴해 분석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나치의 '집단적 광기'에 동화돼가는 과정을 학술적으로 재구성했다.
유혜림씨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나 세월호 참사는 '나치의 병사들'처럼 본래 악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경유착 등 사회적 병폐나 구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책을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유혜림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집회 참가자들과 공유하고자 '책 읽기 시위'를 기획했다. 이날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손수 만들어 '폴리스 라인'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들에 꽂기도 했다.
유혜림씨는 "평소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많지 않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를 향해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SNS 등을 통해 동참한 사람들과 '독서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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