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 등 법조계 17년을 마치고 정치에 입문, 3명의 대통령으로부터 여당 사무총장 ·3선 원내총무·정책위의장 등 당 3역과 내무부장관·국회부의장을 지낸 '정치의 달인', '정치모범생'. 그는 김대중(DJ) 정권 시절 국무총리(2년 2개월)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정권을 넘나들며 현대정치사의 큰 획을 그었다.
돌파·친화력·뚝심 강한 '원칙주의자'
포천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6선 동안 지역기반 하나 없이 입법·사법·행정분야에서 빛나는 족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가 '느닷없이' 2002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연유가 무척 궁금했었다. 포천 출신 기자와 정치인으로 만난 후, 16대 국회 초선의원으로 국무총리 이한동을 지켜본 필자는 책을 덮으면서 그의 대인다운 풍모와 지혜·경륜과 함께 지역사랑의 절절한 마음에 절로 숙연해졌다.
대통령을 시험과 국민평가단 다면면접으로 뽑는다면 단연 수석으로 합격할 정도로 그의 기억력과 기록의 습관, 자기관리는 놀라웠다.
한글을 하루에 다 깨우쳤다는 그의 천재성과 독서습관은 DJ가 "책을 언제 그렇게 읽어서 모든 일에 박식하신가"라고 여러 차례 감탄할 정도였다.
원내총무 시절 군부독재가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국회법개정안을 대통령 면전에서 반대했던 일, 1988년 100여 건의 비민주적 법률을 개정하고, 내무부장관 시절 노사분규를 강경 진압하고 전대협 임종석 의장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던 일 등은 원칙주의자로서의 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5공 청산 당시 김윤환 총무-이종찬 총장라인도 두 손 들고 나갔던 전두환 국회증언·정호용 의원직 사퇴 등을 이끌어냈으며,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인사청문회 도입 등은 특유의 돌파력과 친화력·뚝심 등을 유감없이 보여줘, 언론에서 '이한동 총무학'을 화제로 삼기도 했다.
그는 DJ정부 시절 DJP연합이 깨지면서 자민련 출신이 모두 철수할 때 JP총재의 뜻에 반해 총리직을 유지했던 일에 대해 "인간사의 신의를 중하게 여기고 살아온 사람으로 큰 과오를 범했고 다시 한 번 용서를 빈다"고 술회했다.
그의 정치적 겨울은 3당 합당 후 YS민주계의 집요한 러브콜을 거부하고 민정계를 사수하면서 시작된다.
"文정권, 국민에 공정한 믿음줘야" 충고
그가 스스로 진단한 대통령이 못된 이유.
"나의 정치행보는 옳고 바르지만 너무 밋밋하고 감동이 없어 대중적인 인기를 전혀 끌지 못했고, 요직을 맡아 무슨 일이건 제대로 잘하는 사람 정도로 국민들의 머릿속에 엷게 각인돼있을뿐", "DJP연합이 깨지면서 자민련 복귀명령을 어긴 것은 경위야 어떻든 내가 JP를 배신한 것으로 국민이 본다"고 씁쓸하게 회고했다.
그러나 이 전 총리의 지론인 역동정치론· 국민통합론·국가전략론·중부권역할론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가장 현실적인 '대통령학'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 전반 특히 IT·NT 등 신산업에 대한 혜안으로 '테크노총리'라는 별명이 붙었고 패권주의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진단은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하고 정확하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역사바로세우기가 역사지우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국민통합의 요체는 국민에게 공정한 정부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데 있다고 충고했다. 대통령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데 말 한마디에 원전건설이 중단되고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국정운영, 구속 위주의 검찰권행사 등은 또다른 반헌법적 적폐라고 지적했다.
"보수, 끊임없이 공부하고 혁신해야"
보수진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건국이념과 정치체계의 뿌리와 기둥이 바로 보수주의라는 자부심을 갖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혁신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고 제언했다.
그는 정치에 투신하면서 포천 고향 흙에 보답하고, 찬란하게 빛을 내며 지는 태양과 같이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으나 그렇지 못해 허망하고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덕필유린(德必有隣: 덕은 반드시 이웃이 있다)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닷물은 무슨 물인지 따지지 않고 받는다)를 금언으로 삼아온 노정객의 경륜과 우국충정은 영원히 빛을 발하며 기억될 것이다.
/박종희 16·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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