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충실히 계승 북쪽 제자 화봉
운보등 남쪽 제자들이 만든 모임
후소회가 北 조선화와 접속한 것
남북간의 진화 양상 '비교' 기회


최원식 교수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화봉(華峰) 황영준(黃榮俊, 1919~2002)은 조선화의 낯선 대가다. 조선화란 우리 회화 유산을 일변 계승하고 일변 비판하면서 북에서 새로이 발전시킨 민족적 회화양식을 일컫는 바, 남으로 말하면 한국화다.

예전에는 한국화가 아니라 동양화였다. 동양은 일제의 조어다. 중국을 대신해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오르려는 일제의 야심이 껴묻은 동양은 식민지 잔재다. 동양화는 이 동양에서 파생했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의 제1부 '동양화부'에 공식적으로 사용된 이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역시 잉용함으로써 일반화된 동양화가 4월혁명 이후 국전과 함께 비판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드디어 1982년 국전을 개혁한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동양화부' 대신 '한국화부'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한국화가 60년 만에 동양화를 대체하였던 것이다.

남이나 북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양화를 비판하면서 한국화와 조선화가 정립되었거니와, 조선화의 뿌리에 남의 화맥(畵脈)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종요롭다.

유화로 시작하여 수묵화로 일가를 이룬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저명한 예의 하나다.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이태준(李泰俊, 1904~?)을 비롯한 '문장'그룹과 친교한 근원은 풍속화란 말을 발명한 미술사가이기도 한 바, 그의 월북을 통해 남쪽 문인화의 전통이 북의 조선화와 깊숙이 접속했다.

최후의 화원(畵員)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畵塾)에서 그림을 배운 화봉은 조선화의 또 다른 계통이다. 아다시피 1936년 이당의 제자들이 창립한 후소회(後素會)는 해방 후 친일논란에도 불구하고 남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그중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과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이 우뚝하다.

그런데 이당의 제자가 북에도 있다. 이미 한국에 소개된 일관(一觀) 리석호(李碩鎬, 1904~1971)는 이당의 수제자 그룹이다. 끝내 '동양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승과 달리 문자향(文字香)을 독자적으로 발양한 일관의 화풍은 후소회의 별종이다. 후소회(재주보다 바탕이 먼저)란 이름을 지은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1950)의 뜻에 오히려 닿은 일관의 분기(分岐)는 흥미로운데, 이 점에서도 후소회 출신으로 공훈예술가에 오른 화봉의 존재는 이채롭다. 이당을 어쩌면 가장 충실히 계승한 숨은 제자 화봉을 통해 후소회가 북의 조선화와 정통으로 접속한 것이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화봉의 대규모 전시가 뜻깊다.

마침 화봉 탄생 100주년이다.

권력을 내면화한 북의 조선화가 걸어온 길들을 전형적으로 증언할 이 전시는 후소회가 남과 북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비교할 눈을 열어준다는 점에서도 귀중하다.

더욱이 인천이 낳았으나 인천으로 귀환하지 못한 이당의 반어가 부리는 요술이 정체에 빠진 최근의 남북 관계를 이을 실낱이 될지도 모를 기연을 생각하매 경인일보가 발견한 화봉의 출현이 '역사의 간지'처럼 반짝인다. 남에 두고 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문득 눈을 감은 화봉도 아마도 이 전시회에 동행할 것에 미치건대, 봄아, 오소서!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