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최악의 환관 조고는 진의 영정 즉, 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시황제가 죽은 후 맏아들 부소와 장군 몽염을 자살하게 하고 부족한 주군인 호해를 옹위한 후 스스로 중승상으로 올라 지록위마의 영화를 누렸습니다.
비록 오래가지 못한 나라인 진나라의 왕까지 교체하는 술수를 부리다가 종내는 살해되지만 만약 국가를 경영할 지략마저 있었다면, 아니 과유불급만 아니었다면 영화 관상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한명회와 견줘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분뇨는 더러워 피하는 거지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효공의 책사인 상앙은 공포정을 시행한 지 10년 만에 도적을 사라지게 하고 부국강병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도 상앙이 무섭고 그가 만든 법이 백성들은 무서워서였지요. 그렇게 서슬 퍼런 법치국가의 주인공으로 10년을 호사하던 그도 모함 끝에 끝내 처형되고 맙니다.
'정관정요'에 이런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는 당 태종 이세민이 중신들에게 이렇게 묻지요. "대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쉽소? 만든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소?"
다들 웅성웅성, 설왕설래, 왁자지껄하자 태종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지던 찰나, 간의대부라는 벼슬에 있던 '위징'이라는 자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위대한 왕이시여. 대저 지금까지의 왕들의 치세를 볼라치면 대충 뭐 이렇습니다. 나라의 경영이 위태로워지면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고 그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는데 나라의 기반이 튼튼해지면 군주가 등용한 신하를 내치거나 듣는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저라고 뭐 모가지가 두 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신하도 자신의 목숨의 소중함을 알아 군주에게 잘못이 있어도 간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면 나라의 정치는 점차 잘못되고 종국에는 멸망에 이르지요. 오래전부터 성현들은 그것을 알아 좋고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방지했던 겁니다. 그러니 위대한 왕이시여. 왕께서의 물음에 답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라를 건국할 때야 새로운 마음과 굳은 결의가 있으니 건국이 용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의도 풀어져 해이해지니 유지하는 쪽이 당연히 힘든 것입니다."
이렇게 간하던 위징이 있었고, 또 그 물음을 할 줄 알고 신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임금이었기에 비록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쫓기던 왕이었지만, 태종이 중국의 명군이 된 것이지요.
교육이든 사회든 정치든 이 명제는 삶의 어느 지점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시작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과거 조선시대의 사람처럼 관직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자유롭게 생각할 줄 알던 남명 조식 선생이나 앞서 예로 든 위징 같은 지혜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 모를까? 처음 마음이 유지되는 사회의 존재는 보기 힘들지요.
그래서 정치든 사회든 교육현장이든 균형감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을 깊게 읽어볼 필요는 없지만 '중심을 잡는 사회의 교육'은 바람직한 자기 목소리의 기초과제인 것입니다. 강성하면 쇠하게 되고 높이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갈 때가 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은 초심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모든 행위는 차근차근 한 단계씩 시작해 탑을 쌓고 공들여 쌓은 탑을 지켜나가는 겁니다. 그 기준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사회적 선각인의 표본이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싶은 가치 있는 생활인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피광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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