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거부' 맏며느리 엄마 양심찔려
설 다음날 차례상 다시 봐 조상님께
우리가족 잘 부탁한다고 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맏며느리였다. 보통 이런 이야기엔 순하고 희생적인 맏며느리가 등장하기 마련이라지만 우리 엄마는 영 아니었다. 할머니 못지않게 용감무쌍했고 목소리가 컸다. 그러지 않았다면 엄마의 시집살이는 진정 고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도대체 승자가 누구고 패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서로를 잘도 이겨 먹었다.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이십 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집안 제사를 도맡았다. 장손 남편을 둔 탓에 제사는 많고도 많았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들의 밥그릇을 엄마는 수북이 채워 숟가락을 꽂았다. 딱 한 번 제사를 거른 적이 있었다. 엄마의 칠순 생일이었다. 우리 자매들은 돈을 모아 미국여행을 준비했고 엄마는 제삿날과 겹친다며 단호히 거절했으나 우리도 지지 않았다. "작은 엄마에게 한 번만 부탁해!" 기어이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버티던 엄마는 끝내 작은 엄마에게 몇 번이나 당부를 한 후 여행을 떠났다. "아이고야, 아무래도 느이 할머니가 미국까지 따라와서 나를 제사도 안 지내는 죽일 년이라고 욕할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서였다.
이번 설에 할머니는 속초 작은집과
우리집 차례상 받아 배부르셨겠다
설을 하루 앞두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례 준비는 잘했어?" 엄마가 코웃음을 쳤다. "야, 나는 이제 제사 지내는 사람 아니야. 느이 작은 엄마한테 다 넘겼어." 화들짝 놀랐다. 나이가 들어 더는 힘들다고, 이제는 아들 있는 작은 엄마에게 제사를 다 넘길 거라 숱하게 말은 했지만 처음에는 작은 엄마가 질겁해서 "형님, 제발요!" 애원했고 나중에 작은 엄마도 순순히 제사를 가져가겠다 했을 때는 엄마가 말을 바꾸었다. "안 되겠다. 맏며느리가 제사도 안 지낸다고 시어머니가 욕할까 봐 니들한테 못 주겠다" 그랬는데, 이번엔 정말로 제사를 넘겼다니. "내가 43년을 제사를 지냈어. 우리 시어머니도 43년은 안 했는데. 아이고 지겹어라, 43년이 뭐나. 이제 안 할 때도 됐어." "그럼 차례 음식 안 했겠네?" 내가 묻자 엄마가 대답했다. "야! 꼭 차례를 지내야 음식을 하나? 그냥 식구들 먹자고 했지." "탕국을 끓였다고? 나물도 하고 전도 부쳤다고?" 그랬단다. 탕국이야 맛있으니 했고 나물과 전도 식구들이 잘 먹으니 했단다. 말도 안 돼. 우리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 만둣국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설을 시작한다. "그럼 우리 엄마 오늘 만둣국 차례도 안 지냈겠네?" 엄마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그게 우리끼리 만둣국만 먹고 치우려고 했는데 아이고 야야, 그냥은 못 먹겠는 거라. 느이 할머니 뛰어와서 나를 잡아먹을까 봐. 니년이 제사도 안 지내고 뭐 하는 짓거리냐 할까 봐. 그래서 니 아빠한테 빨리 성경책이랑 성모상 가져오라 해서 옆에 놓고 기도했어. 제사 안 지내서 죄송합니다, 하고 만둣국 먹었어." 그럴 거면 뭐하러 작은집에 제사를 넘기냐고 나는 깔깔 웃었다. 설 지나고 며칠 후 다시 건 안부 전화 끝에 엄마가 말했다. "야, 나는 아무래도 양심에 찔려가지고야, 설 다음 날 차례상 다시 봤다. 탕국 데우고 나물 놓고 상 차려가지고 니 아빠랑 아이고, 조상님들, 우리 가족 잘 부탁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그럴 거면 다시 제사 가져와. 그게 뭐야, 대체?" "아이고, 나는 아들도 없어! 내가 뭐하러 해? 안 해! 나는 다시는 제사 안 지내!" 나는 정말이지 기가 막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호랑이 할머니는 속초 작은집 차례상 받고 또 포항 우리 집에서 차례상 받느라 이번 설 엄청 배부르셨겠다. 그때야 퍼뜩 생각이 났는데, 작은집 사촌 동생은 몇 달 전 결혼했다. 제사 없는 집인 줄 알았을 텐데 올케는 첫 명절부터 앞치마 두르고 전을 부쳤겠다. 얼마나 어리둥절했을까.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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