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501000924800047752

김윤배_-_에세이필진1.jpg
김윤배 시인
이단전(1755~1790)은 스스로를 종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시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우의정을 지낸 유언호 댁의 종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종이었고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아비도 모르는 채 계집종에게서 태어난 천출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르고 작은 키에 애꾸눈이었고 마마를 앓아 심하게 얽은 곰보였다. 어디 한 구석 정을 줄 수 없는 위인이었다. 그가 어떻게 한학을 해서 시를 쓰게 되었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 양반집의 종으로, 어깨너머로 문자를 익혔을 것이고 문자를 익히고 나서 시문을 읽게 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청년 시절, 그는 재야의 문단을 장악하고 있던 일흔셋의 이용휴를 찾아갔다. 옷소매에서 시집 원고 하사고(霞思稿)를 꺼내놓았다. 이용휴는 시집을 읽어나가며 얼굴빛이 달라졌다. 놀라운 문장이었다. 이용휴는 말없이 벽도화 가지를 꺾어 이단전에게 건넸다. 내가 너를 인정하노라는 의미였다. 이단전에게 주는 커다란 상찬이었다.

이용휴는 이단전과의 만남이 유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단전이라는 이름이었다. 단전(亶佃)의 단은 '진실로'라는 의미요 전은 소작인 또는 '머슴'이라는 의미니 진짜 머슴이라는 뜻이다. 이단전은 스스로를 모멸하는 이름을 지어 사용했다. 이름뿐 아니라 호 또한 그랬다. 필한(疋漢)의 필은 하인(下人)의 합자이니 하인 놈이라는 뜻이다. 누구든 자기의 흠결을 숨기려드는 것이 보통인데 이단전은 숨기지 않고 세상에 드러내고 살았던 것이다. 그는 말까지 어버버 해서 쉽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밤마다 시를 쓰고 날 밝으면 나가
여러 문인과 명사 찾아 비평 받아
이 같은 일 10여년간 꾸준히 반복


그런 그가 당대의 문인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시 공부를 했다. 양반댁에서는 일은 안 하고 밤낮으로 시를 쓰고 술을 퍼마시고 시인 묵객들을 찾아나서는 종놈을 곱게 보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놈은 어엿한 문사로 양반들과 시회를 열거나 시문을 통한 교류를 하고 있으니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정쩡하게 눈감아주었을 것이다.

그의 시 스승은 남초부였다가 후에 이덕무로 바뀌었다. 남초부는 당대 유명한 시인이었지만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었다. 이덕무는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시를 잘 가르쳐서 사대부의 자제들로부터 비천한 계급의 자식들까지 두루 찾아와서 시를 배웠다. 이단전이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덕무의 열린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리 시를 잘 가르쳐도 늘 가난했다. 자신을 일러 잘못된 시구를 고쳐주는 시 땜쟁이라고 묘사한 글이 있다.

이단전은 늘 큰 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아름다운 시구를 얻을 때마다 주머니에 넣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우의정을 14년간이나 지낸 남공철은 이단전의 시집 서문에 '밤마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밝히고 꼿꼿이 앉아서 시를 썼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문밖으로 나가 여러 문인과 명사를 두루 찾아보고 비평을 받았다. 이와 같은 일을 10여 년 동안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이군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이군의 시는 영롱한 마음과 지혜가 담겨 있는데, 때때로 곤궁함과 불평의 언어를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군의 시는 마치 화를 내는 듯하고 비웃는 듯하며 과부가 밤에 곡하는 듯하고 나그네가 추운 새벽에 일어나는 듯도 하다'고 썼다.

그의 시는 영롱한 마음·지혜 담겨
때론 곤궁함과 불평 언어 드러내


이단전의 시로 널리 알려진 '관왕묘에서'는 '낡은 묘는 으슥하여 대낮에도 스산하고/의젓한 관우 상은 한(漢)의 의관 입었구나/중원 평정 큰 사업을 완수하지 못해선가/천년토록 적토마는 안장을 풀지 않네'라고 중원 평정을 이루지 못한 적토마의 한을 노래한다. 또 다른 시인 '거미'에서는 '배는 불룩 경륜이 담겨 있고/먹이를 도모하려 그물을 쳐놓고서/이슬방울 군데군데 깔아놓은 데로/바람 타고 날아온 나비 걸려드누나!'라고 재기발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단전은 취하면 사대부를 만나 그들의 패악을 직선적으로 지적했으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그는 술이 취해서 이 시인, 저 시인을 찾아다니다 길에서 쓰러져 죽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