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진상미… 자연적 조건 뛰어나

자채쌀 계승 진상벼 ‘명품’ 품종개발

쌀산업 특구·계약재배 등 인프라도

‘대왕님표…’ 브랜드, 고급화 전략

프리미엄 쌀 시장 독보적 위치 명성

성정석 동국대 교수
성정석 동국대 교수

‘명품쌀’이라는 말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모두가 증명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주쌀이 ‘명품쌀’로 불리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말에는 단순한 수식어 이상의 역사적 뿌리와 과학적 근거, 그리고 시대적 정체성이 녹아 있다.

먼저 역사적 출처부터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성호사설 등에는 여주가 곡창지대였으며 왕실에 진상된 쌀의 주요 산지였다는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조선 후기 왕실에 바쳐진 자채쌀(紫采米)은 밥을 지으면 밥알이 희고 푸른 기운이 감돌며 찹쌀처럼 차지고 부드러워 임금이 ‘홍자광(紅紫光), 옥자광(玉紫光)’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밥맛이 뛰어났다.

이 자채벼는 단순 진상미를 넘어 왕실이 직접 재배한 ‘직영답’에서도 재배되었다는 영조 26년, 순조 5년, 철종 5년의 토지대장 기록들이 그 가치를 입증해준다. 또한 여주는 한강을 통해 서울로 쌀을 운송하기에 유리한 지리적 위치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내내 중요한 곡물 유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여주쌀의 전통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화한다.

여주쌀의 명품으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자연적 조건 역시 여주쌀의 품질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여주는 높은 산이 드물어 일조량이 풍부하고, 출수기 평균 6.4℃의 일교차를 유지하며 쌀알 속 당분과 전분이 충분히 축적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일교차는 벼가 건강하게 자라면서 맛과 영양을 동시에 갖추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청정 남한강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며, 도자기 원료로도 쓰이는 황토 사질양토는 벼 생육에 적합한 토양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조건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여주쌀의 독특한 맛과 품질을 만들어낸다.

품종과 과학적 품질 관리도 여주쌀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주에서는 자채쌀의 전통을 계승한 진상벼라는 고유 품종을 개발해 쫀득하고 윤기 나는 밥맛으로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진상벼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아 밥이 찰지고 시간이 지나도 식감이 유지된다.

또한 이 품종은 여주시와 개발자가 전용 실시권을 보유하여 오직 여주에서만 재배되는 명품 품종이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전통적인 가치 위에 현대적인 신뢰를 더하며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인다.

제도적 기반 또한 여주쌀의 명성을 뒷받침한다. 여주는 2006년 재정경제부로부터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국가지정 쌀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이후 여주지역 8개 농협들은 공동사업법인을 설립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통합 관리하며 품질의 균일성과 신뢰도를 높였다. 특히 전량 계약재배 시스템과 매뉴얼 기반의 과학농법 도입으로 체계적인 생산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힘이다. ‘대왕님표 여주쌀’이라는 브랜드는 2000년에 상표 등록되었으며 세종대왕을 상징으로 삼아 고장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브랜드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브랜드는 단순히 지역특산물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대한민국 프리미엄 쌀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와 명성을 얻고 있다.

‘여주쌀이 명품쌀이다’라는 말에는 근거가 있다. 그 출처는 역사와 자연, 품종과 과학, 제도와 브랜드다. 여주쌀은 전통이 만든 품격 위에 현대 시스템으로 신뢰를 더했다. 그리고 그 모든 명분을 진짜로 지탱하는 힘은 다름 아닌 밥 한 그릇의 진짜 맛이다.

쫀득하고 윤기 있는 밥, 오래 두어도 식감이 유지되는 밥, 누구보다 먼저 임금이 알아보고 지금은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인정한 밥맛. 그 변하지 않는 본질이야말로 여주쌀을 명품으로 만드는 결정적 이유다. 밥맛을 넘어선 신뢰와 정통성, 그것이 바로 여주쌀의 품격이며 대한민국 프리미엄 쌀의 기준이다.

/성정석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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