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 제출·처벌의견서 수백장

보복 우려 고통 ‘구속 필요’ 호소

접근금지뿐… “영장 준비중 참극”

남부청, 수사과정 미흡 감찰키로

사실혼 관계 30대 남성이 상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 이 사건 발생 1달 전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의 추가 폭행사실과 구속 필요성 등이 담긴 고소장과 더불어 600장 분량의 처벌의견서를 경찰에 낸 사실이 경인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검토만 하다 구속영장 신청에 나서지 않으면서 참극을 막지 못했다. 가해 남성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필요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경찰 늑장 대응에 대한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 사건 수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기로 했다.

■ 피해 여성, 600장 의견서로 “가해 남성 구속 필요” 강력 요청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4일 ‘동탄 납치 살인사건’ 가해자 A씨를 폭행 등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고소장이 화성동탄경찰서에 접수됐다. 이 고소장은 A씨에게 상습 가정폭력 피해를 겪던 여성 B씨가 낸 것으로, B씨는 이어 같은 달 17일 변호사를 통해 A씨의 지난 1~2년간의 추가 폭행사실 녹취와 그에 대한 구속·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600여장의 처벌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B씨가 이미 가정폭력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고소를 통해 A씨의 추가 폭행사실을 밝힌 건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 중인 A씨가 찾아와 보복할 우려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고소장 제출에 앞서 B씨는 A씨를 가정폭력으로 세 차례 신고했으며, 경찰은 지난 3월 3일 세 번째 신고 이후 B씨가 피해와 두려움을 호소하자 A씨에 대해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했다.

■ 피해자 호소에 경찰 ‘묵묵부답’… 납치살인 발생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A씨가 분리조치를 무시하고 B씨가 머문 임시거처인 지인의 오피스텔을 찾아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오피스텔 밖으로 나온 B씨를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강제로 끌고 와 흉기로 살해하는 인면수심의 살인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은 법률대리인을 통한 B씨의 추가 고소와 의견서가 제출되자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A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었다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제출 자료가 600장이 넘어 내용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고, 내부적으로는 A씨에 대한 영장신청을 결정하고 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던 데다가 피해자가 추가 고소로 피해 사실을 호소한 만큼, 경찰이 적극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가정폭력, 스토킹과 같은 보복성이 짙은 관계성 범죄의 경우 우선순위를 두고 수사할 필요가 있는데, 분리가 됐음에도 피해자가 600쪽이 넘는 의견을 낼 정도면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던 것을 보여준다”며 “경찰이 할 수 있는 조치인 구속영장 신청도 하지 않은 건 추가 범죄를 방치한 소극적 수사를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경기남부경찰청, 화성동탄서 수사 전반 감찰 착수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과는 화성동탄경찰서의 이번 수사 과정 전반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감찰에 나서기로 이날 결정했다. 국가수사본부는 경인일보 보도 이후 관련 사안을 점검한 결과, 화성동탄서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짓고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