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위의 지구

나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배경 학생이 대부분인 반을 가르친다. 며칠 전 우리는 지구의 날을 맞이해 기후위기를 주제로 상상화를 그렸다. 아이들은 열 나라의 말로 태양에너지와 탄소배출에 관해 토론했다. 교실은 마치 떠들썩한 국제 환경 회의장 같았다.

짧은 토론 후 아이들은 8절 도화지에 진지하게 자신들만의 상상을 채워나갔다. 지구를 품은 고래, 불타는 지구와 지구보다 더 큰 나무, 유리 돔으로 감싼 산소공급형 도시와 사막화된 초원들이 그려졌다.

“선생님, 지구온난화가 문제라면 태양에너지를 차단하면 어때요?”

“태양에너지는 지구에 생명을 주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간이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탄소를 우주 밖으로 보낼 순 없어요?”

“탄소를 보내긴 어려울지 몰라도, 탄소를 바꿀 방법은 있지.”

우리는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진심으로 고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필과 사인펜이 책상 위에 굴러다니고, 각자의 기발한 상상들이 계속 도화지에 채워졌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란 아이들의 그림은 정말 새로웠다.

스케치가 끝나자 나는 미리 준비해둔 고체 물감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물통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130온스 크기의 큰 종이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붓을 행구기 위한 총 20개의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검은 우주와 짙은 녹음을 칠하느라 아이들은 화장실에 몇 번이나 다녀가며 물을 갈고 붓을 빨았다. 화장실 세면대와 쓰레기통에 널브러진 물감에 오염된 물과 종이컵들을 보며 나는 잠시 멍해졌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그리기 위해 기후위기를 만들고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크게 내뱉은 말에 아이들의 붓이 멈칫했다. 모두의 얼굴에 나처럼 복잡한 마음의 색깔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그림은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림 앞에 서 있는 종이컵은 나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에이, 이것도 재활용되죠?”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재활용보다는 덜 쓰는 게 더 좋긴 하지.” 환경교육은 이래서 어렵다. 설명보다 모순이 먼저 보여지고, 말보다 행동이 더 불편하다. 말과 말 사이, 그림과 현실 사이.

그래도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 아이러니 속에서 아이들은 ‘진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꼭 물통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했다.

환경을 지키는 건, 환경에 대해 잘 아는 것보다 ‘이건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날 우리는 지구를 그렸다. 그리고 동시에 지구에 무엇을 흘리고 있는지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