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혼란·갈등 과거 뿌려온 씨앗

진영싸움·프레임 우선·여론재판은

권력 사유화·정쟁 구조적 문제 비롯

업, 다시 지으면 바뀐다는 희망 담겨

미래세대 더 나은 삶 증표 물려줘야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살아가면서 “자업자득이야”, “그건 업보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언젠가는 결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보(業報)’와 ‘과보(果報)’로 설명해왔다. 업보는 내가 한 말, 행동, 마음 씀씀이 같은 모든 행위(業)가 언젠가 어떤 결과(報)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보(果報)는 그 결과인 ‘열매’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업보는 ‘씨앗을 뿌리는 일’, 과보는 ‘그 씨앗이 자라 맺는 열매’다.

이 두 개념은 비단 개인의 삶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 더 크게는 국가와 역사에도 똑같이 작동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도 어쩌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뿌려온 씨앗이 만들어낸 열매, 다시 말해 우리의 과보일 수 있다.

정치권의 끝없는 진영 싸움, 진실보다 프레임이 우선시되는 공방, 그리고 법치보다 정치가 앞서는 여론재판식 풍토는 단지 한 사람의 잘잘못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는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권력의 사유화, 정쟁 중심의 정치, 언론의 편향성이라는 ‘업’이 빚어낸 ‘과보’이다.

그렇기에 정치적 지도자에게는 단순한 인기 이상의 기준이 요구된다. 지도자의 언행은 한 시대의 윤리 수준을 반영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머슨은 “국가는 지도자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일 뿐이다”라고 했듯, 지도자의 품성은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법과 제도가 멀쩡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이의 품성이 병들면 공동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법 정의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신뢰를 잃는다. 국민은 진실이 아니라 소속 진영의 해석을 따른다. 그 결과는 극단적 혐오와 배제, 그리고 상호 불신의 확산이다. 어느새 우리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정의의 형식을 무시하고, 진실을 찾는다면서도 진실을 기다릴 인내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전체가 만든 업보이다.

국민은 “사법부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나 독립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라고 믿고 있다. 사법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치주의는 무너지고 국민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보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그리고 업보는 미래를 결정짓는 예언이 아니다. 업이란 ‘지은 대로 받는다’는 가르침 속에는 동시에 ‘지금부터 다시 지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도 담겨 있다. 이에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어떤 씨앗을 뿌려왔고 어떤 씨앗을 뿌리려고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정치적 피로와 도덕적 냉소는 그동안 우리가 갈등을 소비하고 혐오를 확산하는 데 익숙해진 결과다. 하지만 그 인과의 고리를 끊는 일은 지금, 이 순간부터도 가능하다.

우리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공통된 하나의 질문을 품어야 한다. “이 길의 끝에 우리 아이들은 웃고 있을까?” 정치인이든 시민이든, 이 질문에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정파의 승리가 아니라 상식과 신뢰가 회복된 사회, 법과 정의가 평등하게 작동하는 사회,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새롭게 ‘짓는’ 업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건강성은 단지 법률이나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각자가 품은 성찰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루하루 말과 행동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짓고 있다. ‘남 탓’과 ‘진영 논리’의 유혹에서 벗어나 나의 언행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가, 나의 선택이 미래를 희망으로 세울 수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과보는 무서운 결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오늘은 과거의 업보 위에 선 현재’이고 동시에 ‘미래의 과보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가 짓는 업이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열매가 될지를 상상해보자. 혐오와 분열의 열매일까, 아니면 희망과 공존의 과보일까.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