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장관을 8개월가량 지낸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장관은 함께 근무하던 박남춘 총무과장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노 장관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으로는 최초로 청와대 파견 경험을 갖고 있던 박남춘 과장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노 장관은 그때 이미 대통령을 꿈꾸고 있었다. 외부 일정이 없을 때는 어김없이 박 과장을 찾아 청와대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하루는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고 물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그동안 힘겹게 일하면서 만들어낸 문서를 남김없이 소각할 때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박 과장은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대통령기록관 건립은 이렇게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과 박남춘 과장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단행한 인사에서 국정기록비서관을 복원시켰다. 윤석열 정권과는 달리 국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이를 후대에 제대로 남기겠다는 차원이다.
정부 기록물의 양이나 그 보관과 공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국정의 기록 측면에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같은 조선시대 기록은 우리의 치열했던 기록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심지어는, 왕자가 출생하면 태(胎)를 보관할 장소를 선정하고 태실을 만들어 묻었는데 그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안태등록’을 남겼을 정도다.
어제, 6월 9일은 세계 기록의 날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이날을 기념일로 지정해 기록의 중요성을 새기고 있다. 우리는 기록과 관련하여 무척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 많은 정권이 국정을 기록하고 남기는 데 소홀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우’에 ‘과거의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What is past is prologue)’라는 말이 있다. 기록의 중요성을 언어의 마술사답게 표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시절,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강을 듣고 깨친 바 있어 변호사 개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대통령기록관을 만든 노무현의 기록 정신이 이재명의 국민주권정부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