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은 내 이야기 이해 못하고

초등생 상대 어찌어찌 강의 마무리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식은땀 흘러

순수함과 진지함 이길 지식은 없어

수많은 교사에 경외감 느끼는 이유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금까지 강의를 하면서 진땀 흘렸던 기억이 몇 차례 있다. 가장 먼저 나는 기억은 2008년 세계 철학대회가 아시아권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렸을 때이다. 그때 나는 중등부 철학 올림피아드 강의를 담당했다. 청중은 중학생들이었지만 철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학생들답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도 잠깐, 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학생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직감한 나는 청중의 주의가 흐트러질 때 으레 쓰는 나만의 필살기(?)까지 동원하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아재 개그)를 해도 웃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준비했던 강의안을 포기하고 한자 이야기로 간신히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닌 역량으로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무리였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졸저 ‘열네 살에 읽는 사기 열전’을 펴낸 뒤 어느 도서관에서 ‘사기’를 강의할 때였다. 강의를 하러 현장에 도착했더니 아뿔싸!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내 머릿속에는 ‘눈높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날도 본래의 강의안을 포기하고 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전하면서 어찌어찌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한 학부모가 나를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 아이가 오늘 강의를 듣고, 자기도 ‘사기’의 주인공들처럼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기 위해 ‘앞으로는 학교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어느 대학 철학과의 아무개 교수와 함께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갔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먼저 강연에 나선 그 교수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매사에 감사하며 작은 일에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둥 구구절절 좋은 말씀을 학생들에게 전했는데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 “저도 교수님처럼 대학교수로 편안하게 살면 긍정적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송곳 질문이었다. 그때 그 교수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라면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내 생각도 그 학생과 같았기 때문이다. 서는 데가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지금도 내가 그런 질문을 받은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이후로 나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에는 잘 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강의로 남아 있다. 그럼 가장 쉬운 강의는?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한 강의다. 이들은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를 해도 아는 척,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해도 알고 있는 척, 심지어 방금 창안한 이야기를 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척, 하기 때문이다. 배우기보다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무기로 여기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물다.

아이들은 다르다. 이들은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던 중 교실에 모기가 나타나자 냉큼 손바닥을 쳐서 잡았더니 한 학생이 “모기도 소중한 생명인데 잡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하고 물어서 당황했다고 한다. 질문이 나온다는 건 듣기에 머물지 않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이 솟아 나와 앎의 영역을 스스로 넓혀간다는 뜻이다.

세상에 순수함과 진지함을 이길 지식은 없다. 내가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많은 선생님들께 경외감을 느끼는 이유다. 질문이 쏟아지는 교실에 있다면 그 학생과 교사는 행복하다. 비단 교실뿐이랴, 우리는 지난 겨울에서 봄 사이 도처에서 숱한 질문을 떠올렸고 답을 얻기 위해 애썼다.

내가 당황했던 수업 속의 아이들을 기억한다. 부디 기억 속에 있는 그 아이들이 그때 던진 질문을 품은 채 잘 자라서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