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공판’ 연기한 고법
새정부 헌법적 양해, 李대통령 화답할 차례
나라·국민 향한 고결한 공적기여 실행하면
정치에 협치 싹트고 안보·외교에 국익 실현

“제가 작성한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거나 상심하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정 마담, 배우 김혜은이 21대 대선 개표가 끝나가던 4일 새벽 자필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녀는 5월 31일 작성한 글로 유시민 작가를 비판했다. 유 작가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부인 설난영씨의 노조 폄하 발언을 비판했다가 여성·계층·학력 차별 시비에 휘말렸다. 서울대 출신 김혜은이 비판 의견을 공지했다. “인간의 학력과 지성은 고단한 인생의 성실함으로 삶의 증거로 말하는 분들 앞에서 한 장의 습자지와도 같은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자랑”이라 했다. 갑론을박이 일자 삭제했지만, 사회적 상식에 부합하는 의견이었다. 설 여사를 손절한 양대노총도 설 여사를 비판한 유 작가를 비판했다.
“쫄았제.” 영화에서 정 마담이 나이트클럽 지분을 요구하는 최익현(최민식)을 조롱한 대사다. 그날 새벽 이재명이 대통령이 됐다. 진보진영의 책사이자 이재명 호위 논객인 유시민을 저격한 자신의 글은 박제됐다. 보수, 진보 정권의 박해를 간증하는 연예인들이 유튜브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이 있다. 의견이 의견에, 코미디가 코미디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연좌되는 분열 사회의 어두운 심연. 김혜은이 쫄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날 새벽 김혜은의 심경이 심히 어지러웠겠다, 짐작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 87체제 이후 가장 강력한 정권이다. 집권하기까지 정적들과의 투쟁이 있었다. 그만큼 새 권력에 쫄리는 사람과 집단들이 많다는 얘기다. 쫄리면 풀처럼 먼저 쓰러진다. 대선 도중에 대통령권한대행은 사표를 던지려는 장관들을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야당대표 이재명 수사를 주도한 중앙지검장과 민주당과 맞섰던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정권이 탄생하기도 전에 사표를 던졌다. 자필 사과나 다름 없는 사표다. 새로운 권력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권력교체의 프로토콜이다.
새 정권을 향한 헌법적 양해도 있다. 9일 서울고등법원이 18일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공판 연기를 밝혔다.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 했다. 대법원의 유죄취지 판단을 판결로 확정해야 할 재판이다. 이를 ‘소추’에 재판도 포함시켜, 재판을 대통령 임기 후로 미루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연기 결정은, 국민 선거권과 선출된 행정권력에 대한 헌법적 존중과 양해다. 법원의 사법독립과 삼권분립의 결과적 조율은 절묘하다.
이재명 대통령만 남았다. 헌법적으로 타락한 정적들은 적의를 품기 민망할 정도로 비참하고 비루하다. 헌법 수호와 내란 종식의 제단에 올릴 소 몇 마리면 충분하다. 닭 피까지 쏟을 이유가 없다. 수괴를 단죄하되 연좌엔 분별이 있어야 한다. 사법부가 새 정부에 대해 헌법적으로 양해하고 존중할 의사를 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화답할 차례다. 입법권과 행정권의 불화로 87헌법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적 신뢰로 이를 지탱했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다. 사법부의 삼권분립 존중 메시지에 사법질서 해체로 응해 헌법적 불신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대로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고 단계인 자아실현의 정점에 섰다. 자아초월 욕구만 남았다. 더 이상 이루어낼 인간적 욕구가 없는 사람이 이타적인 욕구를 각성하고 실행해 위인에 이르는 단계다. 투쟁하는 인간 이재명은 대통령 이재명으로 정략과 정쟁을 초월할 수 있다. 지지를 자제시키고 반대를 경청해 나라와 국민을 향한 고결한 공적기여 의지만 실행하면 가능하다. 그것만으로 헌법이 제자리를 지키고, 정치에 협치가 싹트고, 경제에 질서와 윤리가 서고, 안보·외교에 국익을 실현할 수 있다. 김혜은이 개표 결과를 보고 사과문을 쓸 이유가 없는 나라. 이재명 대통령이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초월하면 문을 열 수 있는 나라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