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해소 절실, 여성들 광장으로… 새정부 내각 지켜봐야”

 

1997년 학습모임서 女 노동 공부

前 정부때 정책 후퇴, 고충 심화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등 주도

이번 대선, 여성 비하 잠식 확인

李 정부에 성평등공시제 등 촉구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장은 올해 개설 30주년을 맞은 여성노동전문상담실 ‘평등의 전화’로 인천지역 여성노동자들의 고충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박 회장은 “탄핵 정국 당시 광장에 나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장은 올해 개설 30주년을 맞은 여성노동전문상담실 ‘평등의 전화’로 인천지역 여성노동자들의 고충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박 회장은 “탄핵 정국 당시 광장에 나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성평등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2·3 비상계엄 이후 조기 대선까지 탄핵 정국엔 2030 여성들이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상경을 도운 ‘남태령 시위’부터 은박담요로 몸을 감싼 채 시위 현장을 지킨 ‘키세스 시위단’ 등 깃발과 응원봉을 든 여성들은 탄핵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명숙(57) 인천여성노동자회장은 “탄핵 정국 이전에도 대규모로 모이지 않았을 뿐 여성들은 언제나 목소리를 내왔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불과 9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에서는 개인보다 시민단체 등 조직별로 목소리를 냈고, 그중에서도 강경하고 거친 발언이 두드러졌다”며 “올해 탄핵 정국을 기점으로 2030 여성들은 발언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등 투쟁 문화를 바꿔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1998년부터 인천여성노동자회 상근으로 활동한 박명숙 회장은 어느덧 11년째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역대 최장수 회장’이다.

인천여성노동자회는 노동전문상담센터 ‘평등의 전화’를 통해 인천지역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다.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와 모니터링 등도 주요 역할이다.

그는 대학교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오빠의 제안으로 1991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사무간사로 취직하며 인천지역 노동계에 발을 들였다.

박 회장은 “아들을 진학시키기 위해 여자 형제가 학교 대신 일터로 가 학비를 댔던 시대였다”며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야간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이 맺힌다”고 했다.

유년기 시절 경험은 여성 노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997년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원이 된 그는 5명의 회원들과 함께 ‘여성사랑’이라는 여성주의 학습 모임을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책을 읽으며 여성의 생애주기 전반과 노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을 공부했다”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회원들은 모임에 자녀를 데려와 함께 공부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 여성을 광장으로 이끈 건··· 차별 해소에 대한 절실함

박 회장은 차별 해소를 향한 절실함이 2030 여성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고 했다. 성평등 정책을 퇴보시킨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이 비상계엄을 마주한 분노와 맞물린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후 성평등 관련 예산은 크게 줄었다.

2024년 ‘여성 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은 전년 대비 120억원 줄었고, 일터 내 성차별·성희롱 상담센터인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정부 정책이 후퇴하면서 여성들은 일터 곳곳에서 고충을 경험했다.

2024년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상담 통계를 보면, 전체 상담건수 344건 중 ‘직장 내 성희롱’으로 상담을 신청한 경우는 136건으로 약 40%에 달했다.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이들 중 대다수(100명·73.5%)는 회사로부터 불리한 조치를 받았다고도 했다.

박 회장은 “윤석열 정부의 차별적 정책에 반감을 지니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을 지닌 이들이 광장에 나왔다”며 “수많은 여성들이 광장을 ‘목소리를 내기에 안전한 공간’이라고 여기게 된 것도 집회 참여가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분석했다.

인천여성노동자회도 전국 여성단체들과 함께 고용평등상담실 복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박 회장은 인천 지역 대표로 나서 운동을 주도했다. 서명엔 1만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했다.

박 회장은 “탄핵 집회에서 만나 서명에 참여해준 한 여성분은 매일 소액씩 고용평등상담실 복원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줬다”며 “분노와 무력감에 그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여성의 목소리’ 지워지지 않도록, 대선 후가 더 중요

역설적이게도 탄핵 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는 여성 정책을 내건 공약이 적었다. 여성 후보는 한 명도 없었고,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제외한 대선 후보들의 ‘10대 공약’에서 성평등 공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들은 공약 대신 ‘네거티브’ 전략 속 혐오 발언의 수단으로 등장했다.

박 회장은 “여성과 노동에 대한 비하가 우리 사회에 잠식돼 있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 국면에서 다시 드러났다”며 “여성 의제가 공약 대신 상대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네거티브 수단으로 부각됐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대선 후’를 주목하고 있다. 당장 정부 부처 장관에 여성이 얼마나 포함될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여성 의원 비율이 얼마나 될지도 지켜보고 있다. 여성의 수가 지니는 ‘대표성’ 때문이다.

박 회장은 “내각에서 차지하는 여성 비율은 단순한 수를 넘어 여성 대표성을 상징한다”며 “여성 대표성은 성평등 정책을 의제화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과도 연결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도 여성 의원들이 ‘당선이 될 만한 곳’에 공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성희롱 작업중지권’ 등 도입해 안전한 일터 만들어야

박 회장은 ‘평등의 전화’ 상담 전화를 직접 받으며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청취하고 있다.

전화는 개인 번호와도 연결돼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도 내담자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수많은 상담 센터를 거쳐 ‘법적으로 성희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은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등의 전화를 찾는다.

이를 알고 있는 박 회장은 내담자의 전화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 회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제도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여성의 모성권이 침해되는 상황이나, 성희롱 등 피해가 어떤 관계에서 어떤 유형으로 발생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등의 괴롭힘을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회장은 이를 위해 성희롱 작업중지권 도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인천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한 7개 여성노동자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에 ‘돌봄 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주 32시간 노동제, 성평등공시제, 성희롱 작업중지권 도입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성희롱으로 인한 심리적, 신체적 피해가 인정되면 산재 처리가 되긴 하지만 당사자가 성희롱이 발생한 일터를 이탈할 수 있는 권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희롱 등 피해가 발생하는 순간에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발동시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숙 회장은?

▲1991년 3월~ 1995년 12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사무간사

▲1997년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원활동 시작, 여성사랑 분과활동

▲1998~ 2000년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실업대책본부

▲2000년 8월~ 2017년 6월 인천부평지역자활센터(2007년부터 센터장)

▲2007~ 2013년 인천여성노동자회 부회장

▲2014년 인천여성노동자회 비상근 회장

▲2017년 7월~ 현재 인천여성노동자회 상근 회장

▲2018~2023년 인천시민사회연대회의 공동대표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