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앤젤레스 도심이 전쟁터로 변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불법 이민자 기습 단속이 불씨가 됐다. 시민들은 ‘어떤 사람도 불법이 아니다’는 푯말을 들었다. 요원들은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을 쐈다. 최루탄과 섬광탄이 연이어 터졌고, 차량은 화염에 휩싸였다. 포박된 채 사람들이 연행되고, 이를 가로막는 시민들이 뒤엉켰다.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사냥’은 브레이크가 없다. 판을 계속 키우고 있다. ICE에 이어 7일 주방위군 2천명을 투입했다. 대통령이 주지사의 요청 없이 주방위군 배치를 명령한 것은 1965년 린든 존슨 이후 60년 만이다. 9일에는 해병대원 700명의 합류를 명령했다. 국경을 지켜야 할 군인이 도심에서 시민 진압에 동원된 것이다. 이는 연방군의 국내 정치 개입을 제한한 ‘포세 커미타투스 법’에 위반된다. 트럼프는 LA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돈을 받은 내란 선동자’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연방 인력과 재산 보호’는 해병대 투입의 명분이 됐다.
로스앤젤레스는 인구의 3분의 1이 이민자다. 이른바 ‘생추어리 시티(Sanctuary City)’로 불린다. 연방의 이민 단속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도시다. 트럼프의 연방정부가 반이민정책의 표적으로 LA를 찍은 배경이다. “루프탑(옥상)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 트럼프의 장남이 1992년 ‘LA폭동 한인자경단’을 소환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 난데없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아버지 트럼프의 군 투입을 옹호하면서 한인사회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LA한인회는 즉각 반발했다. 살얼음 같은 시기에 경솔한 행동이라 경고했다.
LA 시위 사태는 정치 대결로도 비화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소속 잠룡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트럼프는 ‘뉴섬의 체포’를 지지하고 나섰다. “트럼프에게 이것은 예행연습이다.” 미 시사 월간지 ‘더 아틀란틱’의 표제가 의미심장하다. 관세 전쟁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를 지지 회복의 희생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위험한 권력이 어떤 일까지 벌일지 예측불가다.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트럼프가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의 정체성에 불을 지른다. 미국 쇠퇴의 징조 같아 안타깝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