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설… 철수설… 한국지엠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8년 경영악화로 군산공장 폐쇄 진통 겪어

정부 ‘공적자금 지원’ 중재 2027년 합의 종료

생산 물량의 90% 美에 수출 관세 피해 직격탄

“美 정부 정책 영구화땐 공장 이전 고려해야”

한국지엠은 인천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다. 지난 2023년 기준 한국지엠의 매출액은 13조7천340억원, 영업이익은 1조3천506억원 규모로, 같은 해 인천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117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인천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는 약 1만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으며 전국 협력사 직원들까지 합치면 수만명의 생계를 한국지엠이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완성차 대기업이자 인천 최대 사업장인 한국지엠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산업 관세 조치가 한국지엠의 ‘철수설’에 다시 불을 지폈고, 여기에 한국지엠이 자산 매각 방침을 밝히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 한국지엠, 2018년 위기 반복하나…커지는 불안감

한국지엠 부평공장. /경인일보 DB
한국지엠 부평공장. /경인일보 DB

한국지엠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8년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전북 군산공장을 갑작스럽게 폐쇄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당시 모기업인 글로벌지엠(GM)은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함께 한국지엠 철수설을 공론화했다. 당시 군산공장은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 등을 생산하는 한국지엠 핵심 공장 중 하나였다.

정부는 곧장 중재에 나섰다. 군산공장 폐쇄 직후 이어진 한국지엠과 정부의 협상은 공적자금 지원으로 결론이 났다. KDB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8천1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지원했으며, GM은 10년간 남은 사업장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이 합의는 오는 2027년 마무리된다. 합의 종료를 1년6개월 가량 남겨둔 현 시점에서 GM 본사와 한국지엠은 한국 공장과 관련한 계획을 명확히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철수설이 올해 초부터 또 다시 제기됐다. 계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제조시설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며 지난 4월부터 자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인천에 본사를 둔 한국지엠은 생산 물량의 9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관세 부과 조치에 따른 주요 피해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 예고 직후인 지난 2월 폴 제이콥슨 GM CFO가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 정책이 영구화할 경우 GM은 공장 이전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한국지엠 부평공장 철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사측, 정비사업소·부평공장 시설 부지 매각 결정

노조 강경 투쟁 예고 속 정치권도 대응 논의 나서

내수 침체·신차 생산 계획없어 지속가능성 불투명

“산업부 등 법적·제도적 개입해 국내 산업 지켜야”

■ 철수설에 기름 뿌린 매각 방침

미국의 관세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지엠 부평공장이 지난 4월(2만1천대)과 지난달(1만여대) 3개 차종(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뷰익 앙코르GX·뷰익 엔비스타)에 대한 추가 생산 물량을 확보하면서 철수설에 대한 우려가 일부 해소되는 듯했다. 미국 내 한국지엠 차량 수요 증가와 관세정책 조정 여지 등의 영향으로 증산 계획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지난달 28일 한국지엠은 국내에 있는 9개 직영 서비스센터(정비사업소)를 차례대로 매각하고, 부평공장의 유휴 자산과 활용도가 낮은 시설·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노조 측에 통보했다. 이번 조치는 모그룹인 글로벌지엠(GM)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지엠은 매각 사유로 지속적인 손실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일부 자산 매각 방침이 수익성 악화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지엠의 철수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됐다.

한국지엠이 자산 매각 방침을 밝힌 지난달 28일은 임금·단체협상을 앞두고 노사간 상견례가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임단협과 맞물려 자산 매각 방침이 공개되면서 노조 측은 크게 반발했고, 부평공장 회사 본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여는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이대로 자산 매각이 이뤄지고, 임단협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강경 투쟁이나 파업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지엠의 이번 방침에 정치권도 우려를 표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실 관계자들은 한국지엠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지엠 자산매각 방침 등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지난 9일에는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더불어민주당 김교흥·유동수·노종면·박선원·이용우·허성무·김현정 국회의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국회의원, 진보당 정혜경 국회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국회의원 등이 국회에서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노동조합 창립 54주년 조합원 가족 한마당 문화행사를 사흘 앞둔 시점에 노조에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신의성실에 어긋난 파렴치한 행위”라며 “한국지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지금 당장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 신차 투입을 확정하고 새로운 투자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근로자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2025.2.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근로자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2025.2.2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한국지엠의 미래는

지속적인 철수설의 위기 속에서 한국지엠의 내수시장은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에 따르면 2018년 한국지엠 국내 판매 대리점은 270여개, 영업 직원은 2천여명 규모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판매대리점은 90여개, 영업직원은 890여명으로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국내 판매 네트워크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지엠의 내수 판매 차량 대수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17년 13만2천377대로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8.57%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2만4천495대(점유율 1.82%)로 80% 이상 줄어들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한국지엠 차량이 감소하면서 한국지엠 정비사업소 역시 2021년 12월 기준 423개에서 지난달 말 393개로 줄었다.

이런 가운데 GM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 공장에 5조원대 자금을 신규 투자해 미국 내 전기차 및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를 통해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 중인 일부 차종을 철수하고 미국 공장 생산을 늘리는 등의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미국 내 차량생산 확대 계획에 한국지엠 생산 차종은 포함되지 않으며 철수설 위기에서는 잠시 벗어나게 됐지만, 한국지엠의 지속가능성 확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GM 측은 최근 투자자 행사에서 한국지엠의 생산량을 당장 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 2023년 국내에서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출시한 이후 명확한 신차 계획은 세우지 않은 상태다.

한국지엠 노조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 생산하는 차종(내수판매)은 2개밖에 없어 내수가 굉장히 축소돼 있다. 한국지엠이 내수판매를 포기할 의도가 아니라면 미래차 생산 계획과 신차 투입, 내수판매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한국지엠은 국내 사업을 지속하려는 장기 대책을 설정하고, 산업부·산업은행은 적극적인 법적·제도적 개입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