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년간 이어온 소음 공격 멈춰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 호응 풀이
접경지 주민들, 일상 회복 기대감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청신호’

“사람 살기 좋은 마을로 다시 돌아가길 바랍니다.”
12일 오후 파주시 탄현면 대동리에서 만난 곽모(85) 할머니는 전날 밤 모처럼 편한 잠을 잤다고 했다. 울음소리와 쇠 긁는 소리 등 지난해 7월부터 쉴 새 없이 이어져 온 섬뜩한 북한의 대남 방송이 들리지 않아서다. 곽 할머니 마을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해 있다. 그는 “밤이고 낮이고 이어진 아주 끔찍한 소리에 잠에서 깬 채로 밤을 꼬박 새는 날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소리가 멈춰 평화롭고 다시 살기 좋은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6월12일자 1면 보도)를 선언하자 이에 호응하듯 북한이 대남 방송을 멈추면서 그동안 소음피해를 겪어온 접경지역 주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전날 오후 2시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했다. 대통령실은 남북 관계 회복과 접경지역 주민의 고통을 덜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을 이날부터 송출하지 않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12일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우리) 지역은 없다”고 밝혔다.
접경지 주민들은 이 정부가 출범과 함께 북한에 뻗은 평화의 제스처가 일상의 회복을 위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인통제선 안의 마을인 ‘통일촌’의 커뮤니티센터장 박경호씨는 “(소음 공격으로) 정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경인데, 이제라도 정부가 주민들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대화를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화해와 대립으로 반복돼온 질곡의 남북관계를 몸소 느껴온 일부 주민들은 북한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여전히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소음 공격에 시달렸던 인천 강화군 접경지역 당산리 주민들도 모처럼 북한의 소음 고통 없이 편안한 밤을 보냈다.
평화롭고 고요한 이 마을이 하루아침에 서둘러 떠나고 싶은 지옥으로 변해 버린 건 지난해 7월이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음을 참으며 지옥같은 시간을 버틴 게 벌써 1년. 그러나 지옥 같던 상황은 이제 급변했다. 소음이 자취를 감추면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왔다. 3주전 아기를 출산한 이선영(38)씨는 “아기의 눈과 귀가 열릴 텐데, 밤잠을 설치지 않을지 걱정이 컸다”면서 “대북방송을 멈춘다는 발표에 하루 종일 들뜬 마음이었는데, 정말로 밤에는 소음이 들리지 않아 저절로 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한편 사실상 ‘1호 대북조치’가 된 대북방송 중지가 성과를 거두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이행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행사에서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며 “평화, 공존, 번영하는 한반도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조수현·김성호·하지은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