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 시민이 대북 확성기 너머로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남북관계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국민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이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등에 대응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1년 만이다. 2025.6.1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11일 오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 시민이 대북 확성기 너머로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남북관계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국민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이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등에 대응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1년 만이다. 2025.6.11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정부가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지하자, 이에 상응하여 북한도 소음방송을 멈춘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에 의하면 12일 0시 이후 소음방송은 청취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접경지 주민들의 일상 회복의 계기로 나아가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의 복원이라는 보다 큰 틀을 위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인천 강화군, 경기도 김포와 파주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북한의 소음 공격으로 큰 고통을 겪어 왔다. 지난해 7월부터 쇠를 깎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주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로, 관광객 급감에 따른 생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이 한둘이 아니었다. 강화군을 비롯한 접경지 주민들은 이번 조치로 소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회를 일회성의 정치적 이벤트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남한은 풍선에 전단을 실어 보내고 북한은 오물을 실어 터뜨리는 우스꽝스러운 풍선 전쟁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2018년 체결된 9·19 군사 합의의 복원이 시급하다. 이 합의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들이 담겨 있었으며, 한반도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대북 확성기를 멈춘 건 일종의 ‘신뢰의 베팅’이다. 말이 통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협력이 가능하다. 북한이 이에 호응했다면, 다음은 우리가 추가적인 신뢰 조치를 제시해야 할 순서다. ‘행동 대 행동’의 신호를 계기로 남북 직통 통신선의 복원, 군사·민간 협력채널 재개, 인도주의 교류와 고위급 회담을 위한 채널 가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트럼프의 외교 안보 정책으로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을 용인하는 조건으로 북미 협상이 급박하게 진전될 수 있다는 예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북한의 ‘두 국가’ 체제 조치로 남북 간 대화가 단절된 채 미국이 한국을 패싱하는 상태에서 북미 협상을 추진할 경우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고립 소외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대화 채널의 복원은 미국과의 공감대 조성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치밀하고 신속하게 추진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