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태반·탯줄 담겨 봉안돼

광주시·관계기관 협의결과 ‘불가’

시의회 행감 “문화적 가치 관심을”

2021년 광주 퇴촌면 원당리에서 발굴된 성종 왕녀 태실. /경기도문화재연구원 제공
2021년 광주 퇴촌면 원당리에서 발굴된 성종 왕녀 태실. /경기도문화재연구원 제공

광주지역에서 잇따라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이 발견돼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조명받고 있는 가운데(2022년 8월24일자 1면 보도) 해당 토지주 중 일부가 개발행위 등 재산권 행사를 이유로 이전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K-탄생문화 '태실'·(上)] 성종태실은 왜 창경궁에 있나

[K-탄생문화 '태실'·(上)] 성종태실은 왜 창경궁에 있나

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창경궁. 안내판을 따라 약간의 경삿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내 나무와 풀숲으로 둘러싸인 편편하고 작은 공간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마치 왕릉에서나 봄직한 위엄있어 보이는 석물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성종태실'이다.이곳을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드문 듯했다. 잠시 발길을 멈춘 이들은 사진 몇 장을 찍곤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 태실은 생명을 뜻하는 '태(태반, 탯줄 등)'를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꿰뚫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성종은 1457년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종은 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정희왕후 윤씨에 의해 차기 왕으로 지목됐으며, 당대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다."왕의 태실중 보존 가장 양호"일제가 관리 명목 서삼릉으로본래는 광주시 태전동에 위치성종태실은 이러한 성종이 태어났을 때 그의 태를 묻어둔 곳이다. 그리고 우리가 창경궁에서 보는 석물은 그가 왕이 된 후 추가로 조성된 것이다. 이를 '가봉태실'이라고 한다. 가봉비는 팔각난간석 면에서 90㎝ 앞에 세워져 있는데, 비석의 앞쪽에는 '성종대왕태실'이, 뒤쪽에는 태실의 가봉과 개수 시기가 언제였는지가 새겨져 있다.김종헌 경기문화재단 선임은 "성종태실은 왕의 태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며 "가봉태실의 표준으로, 남아있는 의궤와 비교해서 보면 명칭과 규모, 장식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성종태실의 원래 위치는 창경궁이 아닌, 광주 태전동이다. 전문가들은 넓은 들판 가운데 볼록하게 솟아있는 봉우리(태봉)에 태실이 위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성종태실의 석물은 왜 창경궁으로 오게 됐을까? 이는 일제 강
https://www.kyeongin.com/article/1711196

지난 11일 진행된 광주시의회 복지문화국 행정사무 감사에서 지난해 5월 이같은 내용의 민원이 접수돼 시가 경기도 등 관계기관과 협의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접수된 민원은 광주 태전동의 태봉산에서 발굴된 성종 태함을 이전해 달라는 것으로, 지난해 5월 광주시에 집단민원으로 접수됐다.

조선왕실에서는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해 ‘태실’이라 하는 곳에 태반과 탯줄을 묻었다. 왕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좋은 기운을 주기 위해 명당자리에 묻어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태실이 태전동을 비롯한 광주지역 일대에 자리했던 것이다.

2021년 열린 광주 퇴촌면 원당리 성종왕녀 태실 발굴조사 일반인 현장공개 설명회. /경인일보DB
2021년 열린 광주 퇴촌면 원당리 성종왕녀 태실 발굴조사 일반인 현장공개 설명회. /경인일보DB

2021년 광주 퇴촌면 원당리에서는 마을회관 뒤 가파른 산비탈 지형의 야산에서 성종 왕녀 태실이 발굴됐고, 전국 최초로 한 봉우리에서 3기 연속 발굴되는 사례로 꼽혔다.

이후 2023년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태실이 있는 광주시 태전동의 태봉산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사실 이곳에는 설치 당시 석조물(태항아리, 태지석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창경궁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발굴을 통해 태함과 하부구조를 일부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주가 지난해 개발행위를 목적으로 이전 요구를 하고 나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는 일단 민원이 접수된 만큼 경기도와 국가유산청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협의에 나섰다.

시 관계자는 “관계 기관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며 “현재 경기도는 태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며, 광주지역 태실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도 지정유산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태실 이전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행감에서 해당 내용을 짚은 최서윤 시의원은 “태실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이렇게 가치있는 문화유산이 지역에 있음에도, 타지역은 이를 향토문화재 등으로 지정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며 “비지정 문화재일 경우 개발공사 등이 진행되면 이런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