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칠성반점

 

교동짬뽕, 얼큰·일반 중 하나 선택 가능

장시간 숙성 ‘면’ 국물 속 흐트러짐 없어

태양초 고춧가루·해산물 등 재료 드림팀

결식아동엔 식사값 받지 않는 ‘따뜻함’

수원시 영화동의 한 주택가. 인구 120만 경기도 수부도시로 성장하는 동안 수원 곳곳에 아파트가 참 많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곳은 수원의 4대문을 잇는 성곽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아직 개발의 바람이 닿지 않았다. 빌라와 주택 단지가 여전히 남아 있고 오래된 점포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즘 사람들 시각에서 보면 낙후된 동네쯤으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뛰어다녔던 익숙한 배경이 이러했다. 비단 논밭이 있는 시골만 향수를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도심 속 주택가는 특히 80~90년대생에겐 추억 그 자체다. 예전엔 냄새도 맡기 싫었던 청국장이 이제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걸 보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차 희미해져 가는 옛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꺼내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인 듯 하다.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칠성반점은 입구 간판에서부터 주력 상품을 자신 있게 소개한다. 음식점 이름보다 더 큰 글씨로 돌판짜장과 짬뽕을 전면에 내세웠다. 돌판짜장은 현재 1주년 기념으로 3천원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는 현수막도 붙어 있다.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짬뽕으로 간다. 할인된 가격을 택하는 게 경제적이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돌판짜장과 교동짬뽕은 곧 메시와 호날두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돌판짜장과 교동짬뽕은 곧 메시와 호날두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가부좌 틀고 짬뽕 한 그릇

교동짬뽕의 정석을 보여주는 칠성반점의 짬뽕. 잘게 썬 돼지고기와 해산물, 버섯, 채소 등 교동짬뽕 원년 멤버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교동짬뽕의 정석을 보여주는 칠성반점의 짬뽕. 잘게 썬 돼지고기와 해산물, 버섯, 채소 등 교동짬뽕 원년 멤버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식탁이 높은 건지 의자가 낮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음식 상이 다소 높게 느껴진다. 그래서 앉자마자 살짝 가라앉은 듯한 괴리감이 온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머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릴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뜨는 순간부터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된다. 가깝게 빨리 먹을 수 있다.

짬뽕 국물이 튀는 반경도 줄어든다. 앞치마를 해도 그 틈으로 짬뽕 국물이 튀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얼굴을 최대한 음식과 가깝게 가져가야 하는데 이 부분이 구조적으로 보완된 셈이다. 생각을 바꾸니 장점이 보인다. 긍정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의자와 탁자 사이의 공간이 넓다 보니 자연스레 발을 들어올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튼 채 체내 모든 신경세포를 오롯이 짬뽕에만 집중하니 짬뽕 맛이 배가 된다. 역시 모든 일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칠성반점이라 그런지 냉장고도 칠성으로 도배돼 있다. 사이다도 칠성만 쓴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칠성반점이라 그런지 냉장고도 칠성으로 도배돼 있다. 사이다도 칠성만 쓴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 집은 교동짬뽕만 취급한다. 얼큰한 맛과 일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여태 맵부심 하나로 버텨왔건만 점점 매운 음식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 짜장과 짬뽕 간 선택보다 매운 맛이냐 아니냐를 두고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장고 끝에 얼큰한 맛을 주문했다. 먹는 중에 혼잣말로 ‘하나도 안 맵구만. 아직 살아있네’를 되뇌는 순간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땀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장고의 끝은 결국 악수다.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아버지도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늘상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확실히 매운맛 면역이 떨어지나보다. 인생의 매운맛이 더해져셔일까.

짬날 때마다 짬뽕 먹어야

‘짜장파’인 수원시민 백모(78)씨는 지금도 짬뽕은 서비스로 나오는 정도의 국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들이 ‘짬뽕파’로 전향하는 그날까지 ‘웃기는 짬뽕’은 계속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짜장파’인 수원시민 백모(78)씨는 지금도 짬뽕은 서비스로 나오는 정도의 국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들이 ‘짬뽕파’로 전향하는 그날까지 ‘웃기는 짬뽕’은 계속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곳의 짬뽕은 교동짬뽕의 정석이다.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한 걸쭉함을 뽐낸다. 국물에서부터 교동짬뽕 특유의 약간 고릿한 향이 느껴지는데 이게 또 반갑다.

입 안 가득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교동짬뽕의 전형적인 맛이다. 잘게 썬 돼지고기와 목이·표고버섯, 오징어·홍합·가리비 등의 해산물이 뒤섞여 있고 양파·배추·청경채 등과 함께 생부추와 다진 고추까지 올라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참깨도 고소한 풍미를 더해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참깨 덩치가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치아 사이에 끼면 은근히 골치 아프다.

이곳에선 면을 장시간 숙성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동짬뽕의 억센 국물 속에서도 면발이 흐트러짐 없이 쫄깃함을 유지한다. 여기에 국내산 태양초 고춧가루만 사용해 걸쭉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한 번 드시면 100년을 잊지 못할 맛으로 모시겠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짬뽕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겼다.

면은 장시간 숙성을 거쳐 부드럽고 쫄깃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면은 장시간 숙성을 거쳐 부드럽고 쫄깃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국물은 음식의 일부다. 다시 말해 남기는 건 옳지 않다는 말이다. 극장에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뜨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뜨는 이들 때문에 마지막 여운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엔딩크레딧 또한 영화의 일부다. 영화도 끝까지, 짬뽕도 끝까지. 그릇 밑바닥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은 주인장이 거센 불길 앞에서 흘린 땀 한 방울과 다름없다. 그래서 ‘완뽕’은 기본, 웬만해선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살찌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매장 내에 재미난 액자 하나가 눈에 띈다. 짜증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고단할 땐 고량주 등 중식계 세기의 명언이 적혀 있다. 그런데 마땅한 문구가 없었는지 짬뽕은 없다. ‘짬이날 땐 짬뽕’을 추가해보면 어떨까.

국물은 음식의 일부다. 완뽕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국물은 음식의 일부다. 완뽕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이날 땐 짬뽕’을 추가해보길 권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이날 땐 짬뽕’을 추가해보길 권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곳은 지역 내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식사값을 받지 않는다. 동네 이모·삼촌이 밥 한끼 차려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와서 먹고 가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이런 음식점은 시쳇말로 ‘돈쭐’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향한 안내문에 적혀 있던 ‘오늘도 크느라 수고했어’라는 글귀가 계속 맴돈다.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착한맛집’.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착한맛집’.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