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릉 인근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맨발로 둘레길을 걷고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홍유릉 인근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맨발로 둘레길을 걷고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나무가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이 있는 숲길을 걸으며 더위를 식혀보는 것은 어떨까. 도심에서 잠깐 시간을 내 산책을 하며 느림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점심 식사 후 욕심을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는 둘레길, 남양주시 홍유릉 둘레길이다. 시청 공무원, 기업체 직원들, 인근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걸으며 담소도 나누고, 중간중간 마련된 의자에 앉아 차도 마시며 잠깐 동안의 휴식을 즐긴다.

둘레길은 금곡동에 위치한 조선왕릉 홍유릉 뒤편의 숲길이다. 둘레길을 따라가다보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의 묘역인 영원이 있다. 그리고 덕혜옹주 묘, 의친왕 부부 합장묘, 이구 황세손의 회인원과 후궁들의 묘역을 만날 수 있다. 둘레길에는 굴곡진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다. 역사와 자연을 느끼며 산책하는 이 구간은 도시와 자연을 잇는 생태길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존의 공간이다.

홍유릉 둘레길에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의 탄생과 유년시절, 노년의 생활 등 일생을 적은 설명문과 그 당시의 자료사진들이  게시돼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홍유릉 둘레길에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의 탄생과 유년시절, 노년의 생활 등 일생을 적은 설명문과 그 당시의 자료사진들이 게시돼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자연과 역사를 감상하는 홍유릉 둘레길

홍유릉 둘레길은 입구에서 족욕 쉼터까지 1.8㎞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인근 직장인들에게는 점심 식사 후의 산책코스 구간으로 유명하다. 아침·저녁으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길이기도 하다.

돌담을 따라 둘레길을 걷다 보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를 합장한 영원과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가 묻힌 회인원이 있다. 비교적 언덕에 있는 이들 무덤을 살펴본 뒤 다시 걸으면 덕혜옹주의 묘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의친왕과 의친왕비 김씨의 합장묘가 있다. 덕혜옹주는 고종과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종의 고명딸이고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귀인 장씨다. 이들의 묘는 2017년에야 개방됐다.

둘레길에는 대한제국의 황제 복식을 비롯해 고종황제 국상, 조선 제1대 태조에서 24대 헌종 왕릉에 대한 설명을 적은 설명문과 자료집이 사진으로 게시돼 있다. 특히 덕혜옹주의 탄생과 유년시절, 노년의 생활 그리고 의친왕의 일생을 적은 설명문과 그 당시의 자료사진들이 게시돼 있어 대한제국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공부할 수 있다. 둘레길에는 수백미터 간격으로 후궁묘,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 묘와 의친왕 묘 등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홍유릉 둘레길의 족욕 쉼터에서 주민들이 족욕을 즐기고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홍유릉 둘레길의 족욕 쉼터에서 주민들이 족욕을 즐기고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도심속 소나무 숲과 벗 나무 그리고 흙길

둘레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운동기구가 보이면 운동을 해도 된다.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돼 걷기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 고즈넉한 흙길이 이끄는 발길을 따라 잠시 자연이 주는 공간에서 문화재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펼쳐진 흙길 옆으로 소나무 등이 울창하고 솔방울과 도토리가 곳곳에 떨어져 있다. 둘레길에는 나무들이 긴 줄을 서 있는데 주로 벚나무다. 4월이면 이곳이 ‘벚꽃 명소’로 꼽히는 이유다.

홍유릉 둘레길을 걷다보면 전통수목 양묘장을 만날수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홍유릉 둘레길을 걷다보면 전통수목 양묘장을 만날수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특히 이곳은 모두 문화재 보호구역이자 그린벨트 지역으로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다. 흙길 옆에는 소나무와 각종 나무를 키우는 양묘장이 있다. 일부 지역에 두릅나무와 각종 나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채취해서는 안된다. 무단 채취 시 처벌 받을수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둘레길이 맨발 걷기 명소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족욕 쉼터도 마련돼 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자 인근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맨발 걷기를 시작한다. 둘레길에서 맨발로 걷는 것은 가능하지만 홍유릉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있는 구역은 맨발로 들어갈 수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간중간 화장실, 나무의자 등도 마련돼 있어 편리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깊은 숲 속에서만 느끼는 산들바람의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 둘레길은 은행나무, 벗나무, 소나무들로 구성돼 있어 걷는 동안 나무 그늘 덕분에 햇빛을 피할 수 있다.

리멤버1910의 휴게공간인 카페에서 방문객들이 홍유릉 둘레길을 산책한 후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즐기고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리멤버1910의 휴게공간인 카페에서 방문객들이 홍유릉 둘레길을 산책한 후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즐기고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역사 문화 체험 공간 ‘이석영 광장·리멤버1910’

둘레길을 걷고 나서 커피나 홍유릉 바로 앞에 마련된 역사전시관 리멤버1910을 방문하면 좋다. 경술국치를 당한 1910년을 기억하고 남양주시에서 자랐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중국 다롄의 뤼순 감옥을 그대로 재현해놨고 시간대가 맞으면 시민 도슨트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특히 리멤버1910 누리집을 통해 신청하면 직접 당시의 의상을 입고 모의법정도 체험할 수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좋다. 홍유릉과 둘레길을 걸은 뒤 찾기에 제격인 곳이다.

특히 리멤버1910은 휴게공간이 넓은데다 안에 카페가 있어 빵과 음료도 즐길 수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음료를 구매하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쉴 수 있어 더욱 좋다. 홍유릉을 둘러본 뒤 지친 발걸음을 쉬기 안성맞춤이다.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끼며 걸을 수 있는 홍유릉은 입장료 1천원(남양주 시민 500원)이 필요하다. 표를 소지하고 있으면 당일에는 자유롭게 홍유릉을 드나들 수 있다. 둘레길을 비롯해 후궁묘,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 등은 입장료 없이 무료로 거닐 수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