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등 희망 품게하는 인문강좌
글쓰기서 핍진한 삶 담은 작품 선발
상장·부상 제공하는 ‘팬지문학상’
다른 이름은 ‘길거리 문학상’ 불러
‘클레멘트 코스’도 새 이름이 필요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사업의 운영을 인문공동체 ‘책고집’에서 맡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세우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경쟁입찰 방식으로 발주한 사업이다. 책고집은 다음 달부터 전국의 노숙인 시설과 교도소, 지역자활센터에서 일제히 인문 강좌를 진행한다.
클레멘트 코스는 1995년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뉴욕 주변의 노숙인들을 모아 철학과 문학, 미술사, 역사 등을 가르쳤던 인문 강좌이며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바로 그 얼 쇼리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내의 노숙인과 재소자, 저소득주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삶의 희망과 꿈을 품게 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인문 강좌다.
특히, 이번 사업은 지난 20년 동안 서울 등 대도시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던 거리의 인문학을 보다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전국화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인문학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문사철’을 기본으로 하되, 그에 더해 연극과 마임, 미술, 음악, 글쓰기, 과학, 사진 등을 망라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글쓰기 수업을 통해 길어 올린 참여자들의 글 중에서 핍진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선발해 상장과 부상을 제공한다. 이름하여, 팬지문학상의 제정이다.
팬지(Pansy)라는 말은 프랑스어 팡세(pensee)에서 유래했다. 팡세는 사유, 생각, 상상, 명상 등을 뜻한다. 팬지는 꽃 모양이 명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팬지문학상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유와 상상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이자 선물이다.
1976년 발표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에 팬지가 등장한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고, 두 송이를 따서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는다’. 소설 속의 그날 밤은, 부동산 투기꾼들이 난장이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 입주권을 죄다 휩쓸어 간 날이었다. 더는 어디서도 살 수 없게 된 난장이는 스스로 생을 내려놓는다. 남은 가족의 불행은 ‘두 송이의 팬지꽃이 폐수에 던져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박범신이 소설 ‘은교’에서 쇠별꽃에 은교의 모습을 투사했듯, 소설 난쏘공에서 팬지는 조그맣고 가녀린 영희를 표상한다. 영희는, 그리고 팬지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어린 여공들이었고, 철거 경고장 앞에서 좌절하며 무력하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난장이의 모습이기도 했다.
팬지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골목 어귀에서 가장 먼저 피는 것이 팬지꽃이다. 유럽산 제비꽃을 개량한 팬지는 흰색, 노란색, 자주색 등 3색이 기본색이어서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부른다. 팬지 말고도 도심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종으로는 피튜니아, 메리골드, 베고니아, 제라늄 등이 있다. 이른바 5대 길거리 꽃들이다.
팬지문학상의 다른 이름은 길거리 문학상이다. 도심 거리를 떠도는 사람이 어디 노숙인뿐이겠는가.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하는 건설노동자들, 시장통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 혹은 버스에서 혹은 전철에서 파김치가 된 몸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거리의 사람들이고, 팬지문학상은 바로 그들의 고단한 일상과 노고를 위무하는 문학상이다.
팬지문학상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문학상이 탄생하듯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에도 새 이름이 필요하다. 얼 쇼리스의 인문 정신을 계승하고, 클레멘트 코스의 운영 원칙을 따르되 우리의 실정에 맞는 이름이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분이라면 누구든 한국형 클레멘스 코스의 이름을 제안할 수 있다. 부디 우리에게 어울리는 맞춤한 이름이 지어지길 바라 마지않는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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