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 보는 책?… 잊힌 그림책 권리
1946년 한국 최초 ‘우리마을’ 출간
2000년대 국적 넘나드는 시장 조성
정부도 양성 나서 해외 보급 등 지원
업계 “체계적 조사·연구·제도개선”

올해는 ‘그림책의 해’다. 작가와 서점, 독자들이 모여 매년 다른 주제로 책의 해를 이어가는 ‘책의 해 추진단’은 올해 주제를 ‘그림책’으로 정했다. 그림책이 대주제로 선정됐다는 건 그림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책의 독자층은 영유아를 넘어 성인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에 비해 아직까지는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선입견도 여전한 실정이다.
■ 한국 그림책 80년사
한국 그림책의 역사는 8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이책을 모티브로 한 당시 그림책은 이야기보다는 특정 메시지를 그림과 함께 전달하기 위한 짧은 글의 형태에 가까웠다.
1946년에는 한국 최초의 그림책으로 알려진 ‘우리마을’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한국 전통 풍습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후 30여년간 삽화 중심의 그림책이 드문드문 출간됐다.
시각 언어와 글이 어우러진 현재의 그림책 형태가 출간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다. 문학·예술도서를 발행하는 동화출판공사가 1978년부터 약 4년간 준비해 국내 첫 창작 그림책인 ‘그림나라 100’을 펴냈던 것이다.
1980년대로 접어들며 여러권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전집, 낱권 판매가 이뤄지는 단행본이 등장한다. 이미지로 의미를 표현하는 서술 방식으로, 현대 그림책의 시작을 알린 ‘백두산 이야기’도 1988년 독자들을 만났다. 류재수 작가가 쓴 이 책은 한국 창작 그림책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인식된다.
1990년대 그림책 전업 작가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외국 유명 작가의 그림책과 고전이 낱권으로 속속 출간되면서 국내 창작 그림책 환경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이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제박람회 등 국적을 넘나드는 그림책 시장이 만들어졌다.
2010년 이후로 국내 그림책 작가들의 수상이 이어지며 정부도 최근 그림책 분야 양성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그림책 작가와 작품 인지도를 높이겠다”며 2년 전 ‘대한민국 그림책상’을 신설했다. 당시 문체부는 수상작의 해외 진출 지원, 해외도서관 내 한국그림책 보급 등 한국 그림책을 세계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 업계 “K-그림책 성장 견인할 기초 통계·축적된 데이터·지원 필요”
정부가 한국그림책 성장을 돕겠다고 했지만, 정작 제도·행정적 기반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현재 그림책 관련 기본 통계와 축적된 데이터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십진분류법상 그림책을 분류하지 않고 있지만, 일본은 예술·회화의 하위 분야에 그림책을 명시하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재 한국 십진분류법에선 예술(610)과 회화 및 도화 및 디자인(650) 분야 분류번호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현 제도 안에서도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한국 그림책 시장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권리를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그림책 분야에 대한 조사와 연구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병규 그림책연구자는 “그림책이 유행처럼 한때 소비하고 지나쳐버리는 장르가 될까 걱정이 앞선다”며 “한국 그림책 시장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될 체계적인 지표와 정책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5년째 그림책 전문 서점 그루터기 책방을 운영 중인 강혜진 대표도 “불과 몇년 사이에 독특한 주제 의식을 담은 그림책이 늘어났다”며 “그림책에 대한 제대로 된 분류가 필요하고, 적어도 그림책을 소비하는 독자층에 맞게 유아동·비유아동 서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림책협회에서는 5년여전 ‘그림책, 온라인 서점 분류 체계’를 주제로 학술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진행한 당시 연구에선 그림책을 ‘연령’ ‘주제’ ‘논픽션’ 등 보다 세분화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연구는 어린이들의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는 주제를 담은 그림책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