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대 열명 중 셋 ‘겪었다’ 답변
통화 요청 문자… 일종의 배려인가
초임검사 시절 예상 못 한 지적처럼
‘느닷없음’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
공적인 영역선 극복 필요해 보여
초임검사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차장님은 초임검사에 대한 애정이 아주 크셨습니다. 커도 너무 커서 검사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흘러넘치셨지요. 좋게 생각하면 검사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부단히 노력하셨습니다. 검사들끼리는 직전에 사법연수원 교수님을 지내셔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을 하곤 했지요. 덕분에 모든 사건을 차장님까지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음주운전 사건부터 고소가 취소된 사건까지도 모두. 검찰의 직급은 부장보다 차장이 높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이 이미 결재한 사건을 차장님이 다시 검토한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었지요. 그럼에도 차장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6개월간 애정 쏟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차장님의 넘치는 애정 덕분에 초임검사들은 결재 올리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사가 부족하거나 오타라도 한자 있으면 여지없이 차장실로 호출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곤 애정 어린 말씀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번 차장실에 다녀오면 얼이 빠져 잠시 멍 때리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지요. 때문에 결재를 올리는 날엔 전화벨 소리가 호랑이 울음처럼 무섭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혹시 차장실에서 나를 호출하는 전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요. 안타깝게도 그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는 어쩌면 ‘콜포비아’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요.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콜포비아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급속하게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대화의 대부분을 문자로 해결하다 보니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지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처럼 혼자 놀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SNS의 발달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고 합니다.
콜포비아는 특히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고 하는데요. 한 조사에 따르면 20~40대 열명 중 세명 가량이 콜포비아를 겪어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대는 유선전화 대신 휴대전화를 더 많이 혹은 전적으로 사용한 세대이기도 한데요. 휴대전화는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선전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전화응대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신입사원들에게 전화 응대법을 따로 가르치거나 전화 응대 자체를 외주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저도 요즘 ‘통화 가능한 시간에 전화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톡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전화하면 될 텐데’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일종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콜포비아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데요. 사생활의 보호라는 영역에 콜포비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업무의 영역이라면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은 조금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콜포비아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두려운 것은 전화나 전화 벨소리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중요한 것은 모르는 사람 혹은 느닷없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겪었던 콜포비아도 비슷했거든요. 차장실의 전화가 두려운 게 아니라 차장님으로부터 받게 될 예상치 못한 애정이나 지적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량없는 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특히 회사나 관공서의 업무와 같은 공적인 영역이라면 좀 달리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영역이라면 오히려 존중하려는 태도보다는 극복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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