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말만 잘하면 빚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의 힘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꿰뚫고 상황에 맞게 쓰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무신경하게 뱉은 말은 오히려 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말의 무게감은 정치인에게 더욱 중요하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발언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파급력을 지닌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도, 단번에 그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 양우식(국·비례) 의회운영위원장이 도의회 사무처 직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고발 글이 공개되며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이 사건이 알려지자 국민의힘 중앙당은 철저한 대응을 예고했고, 결국 국민의힘 경기도당 윤리위원회는 당원권 정지 6개월과 당직 해임 처분을 내렸다. 현재 그는 모욕 혐의로 경찰에 피소됐으며 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양 위원장은 사과는커녕 유감조차 표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말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책임지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운영위원장직을 유지하며 회의를 주재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공직사회, 시민사회까지 그의 사퇴와 제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그는 말할 책임도, 물러날 용기도 외면한 채 직책만 붙들고 있다.
공무원노조 경기도청지부가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도청 소속 공무원 9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98%가 양 위원장의 위원장직 유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무책임한 말로 천냥 빚을 졌고 신뢰를 잃은 정치인이 됐다. 정치인의 말은 그의 품격을 나타내고 그에 따른 책임을 동반한다. 도민이 양 위원장에게 원하는 정치는 단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알고 그에 책임지는 자세다.
/한규준 정치부 기자 kkyu@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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