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청년의 쓸쓸한 죽음·(中)]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족, 재해 입증 안돼 보상 못 받아
본국 대사관 때늦은 유족 연계
비용 부담·복잡한 행정절차에
시신 인도·입국 포기 ‘다반사’
범죄 혐의점 없다면 ‘기타’로 처리
농장주, 고용 감추려 시신 유기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진 채 고향의 가족 품에도 돌아가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사망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이 쌓여가고 있다.
■ ‘14일’ 안에 유족 못 찾으면, ‘무연고자’ 장례
국내 체류 외국인이 사망하면 병원이나 경찰은 지자체에 사망자 가족 등 연고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이 경우 지자체는 사망자의 본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유가족의 시신 인수와 장례 진행 의사 등을 기다리는 기간은 ‘14일’뿐이다. 이 기간 안에 답신이 없으면 지자체는 사망자를 ‘무연고 시신’으로 분류하고 공영장례를 진행한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인천에서 사망한 외국인 무연고자만 25명이나 된다.
문제는 사망한 외국인의 본국 상황 등에 따라 대사관이 유가족을 신속히 찾지 못하는 게 다반사라는 점이다. 지난 1월 인천 서구 한 목재 야적장에서 사망한 베트남 청년 도탁칸(Do Thach Khanh)도 구청의 요청을 받은 주한베트남대사관이 지속적으로 그의 가족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6월18일자 6면보도) 도탁칸은 다행히 공영장례가 치러지기 직전에 유족이 나타났지만 끝내 대사관이 유족을 찾지 못하거나 공영장례를 치른 후에야 찾는 일이 많다.
인천 한 구청 공영장례 담당 공무원은 “외국인 사망자는 유가족을 찾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 무연고 시신을 고시한 지 14일이 지난 후에도 장례를 진행하지 않고 기다린 적도 있다”며 “시신 안치비용 탓에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끝내 공영장례를 진행했는데 그 이후에 대사관으로부터 가족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 장례비·항공료 등 부담에 입국 절차도 복잡, 유족은 피눈물
대사관을 통해 외국인 사망자의 유족을 찾아도, 결국 이들이 시신 인도를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유족이 시신 안치비와 장례비, 항공료 등을 부담할 여력이 없어서다. 통상 외국인 사망자 유족이 국내에 입국해 장례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천만원이라고 한다. 시신을 본국으로 이송하려면 시신에 약품 처리를 한 뒤 특수화물로 이를 이송해야 해 비용이 2배나 더 든다.
복잡한 행정 절차도 유족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들이 한국에 입국해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단기방문(C-3-1)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들은 가족·혼인 관계 증명서와 위임장, 한국 경찰로부터 받은 사망진단서를 한국 대사관에 제출해야 한다. 또 대사관이 서류를 번역하고 공증한 뒤에야 비자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서류를 발급받고 공증을 요청할 수 있는 행정 서비스가 갖춰지지 않은 국가라면 유족은 이렇게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고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비자 발급은커녕 여권도 없는 유가족들이 많다”며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나 활동가, 교민회 등의 도움 없이 복잡한 행정 절차와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를 딛고 한국에 입국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유가족은 거의 없다”고 했다.
■ 통계 밖 죽음, 사망 경위조차 알기 어려워
지난해 국내에서 사망한 외국인은 3천163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타 사망자’는 13.6%(431명)나 된다. 뚜렷한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 수사는 종결되기 때문이다. 병사(2천493명), 자살(61명) 등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이들이 어떤 경위로 사망에 이르렀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난 4월13일 인천 남동구 한 공원 공중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베트남 국적의 팜반탄(PHAM VAN TAM)에 대해 경찰은 극단적 선택에 의한 사건으로 종결했다. 팜반탄의 친구들은 그가 직장 동료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았다며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주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을 때에는 이들이 의무로 가입하는 삼성화재 외국인 사망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작업환경, 과로 등으로 질병을 얻어 사망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워 사측의 보상과 보험금을 받기 어렵다.
목재 야적장에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 도탁칸도 불법체류 단속으로 오인해 도주하다 사망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은 도탁칸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경찰도 그의 사망 경위를 밝혀내지 못해 결국 사측에 보상을 요구하지 못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죽음도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고용주는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면 이 사실을 지역 출입국에 신고해야 하는데, 사측의 과실 등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은폐하는 일도 있다. 지난 2023년 경기 포천에서 사망한 태국 국적의 분추(Boonchu)가 대표적인 예다.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그가 대동맥 파열로 돌연사하자, 농장주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의 시신을 인근 야산에 유기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분추의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그도 출입국에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 사망자 중 1명이었을 것이다.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의 장혜진 노무사는 “이주노동자의 병사가 업무상 재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선 이들의 질병과 업무 강도·환경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경찰도 이를 확인하려 하지 않아 무척 어렵다”며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은 시신이 병원이나 경찰에 인도되지 않으면 이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