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납북자 10만명, 가족들 연좌제로 고통
“납북·월북 완전히 달라”명예회복 위해 건립
피해자모임 대북전단 살포의 주요 장소되기도

“김정식, 나랑 같은 이름의 납북자가 무려 3명이나 있네”
24일 오전 11시에 찾은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김정식(40대)씨는 기념관 2층 상설전시관에 위치한 ‘기억의 방’에 적힌 납북자 4천777명의 명단에서 본인의 이름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3년 동안 ‘전시납북자’는 약 10만명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기억의 방에 적시된 명단은 정부가 지난 2011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납북신고를 통해 가족 등이 공식 서류를 제출해 정식 피해자로 인정한 납북자 일부의 이름이다.
단체 안보 관광으로 방문한 김씨는 “임진각 곤돌라를 타러 왔다가 기념관을 우연히 방문했다”며 “특히 나와 같은 이름을 보고 흠칫했다. 이름과 함께 적힌 서울, 전북, 충남 등 이들의 각기 다른 주소지에서 3명이나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건데, 납북에 대한 의미와 규모도 이렇게 큰지 처음 깨달았다”고 말했다.

납북(拉北)자는 북한군 등에 납치당해 강제로 북에 끌려간 사람이다. 자발적 의지로 북한에 목적을 갖고 넘어간 월북(越北)과 다르다. 납북자 대다수는 전쟁 당시 북한의 의용군으로 편입돼 노동력 착취를 당하거나 물자 운송, 복구 작업 등에 투입됐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올해 75주년이 됐지만, 납북자가 이슈로 떠오른 건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이후다. 전시납북자들의 단체인 ‘6·25사변납북자가족회’(현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1953년 활동이 중단됐다가 2000년에 재결성됐다.
그 이전까지 납북 피해자의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연좌제’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반공, 레드콤플렉스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 겹쳐 납북과 월북이 오인되며 가족들은 차별 등을 겪어야 했다는 점이 기념관 곳곳에 적혀 있었다.
납북자들의 가족에 대한 연좌제 피해와 가장이 돼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의 경제적 어려움 등도 소개돼 있었다.
특히 남북자의 96.7%가 남성이며 그중 대부분이 20~30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에서 북한과 인접한 경기도와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43%가 북에 납치됐다.

기념관이 설립된 이유도 이같은 납북자와 가족들의 명예 회복과 피해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립에 181억원 이상이 투입된 기념관은 2017년에서야 건립됐다.
납북자기념관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5만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6.25전쟁 기념 주간인 이날도 오전에만 500명 정도가 찾았다”며 “외국인이 방문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해 관심이 크고, 납북자 가족들도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치유의 공간인 이곳이 최근 남북관계 긴장의 주요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전후(戰後)납북자’ 가족들로 주로 구성된 납북자가족모임은 지난 4월 23일 기념관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시도하고, 관련 행사를 진행했다. 전후납북자는 516명이 북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에도 이곳에서 살포 시도가 있어 파주시와 경찰 등과 대치한 바 있다.

실제 이날 역시 기념관 입구 인근에는 경찰 버스 1대와 경찰관들이 자리잡고 있고, ‘대북전단 살포 지역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 금지 조치’라 적힌 경기도의 현수막도 걸려 긴장감이 맴돌았다. 납북자가족모임은 당초 집회 신고 기간인 다음 달 10일 이내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했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납북자가족모임이 ‘살포 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남북관계 실마리가 풀릴지 관심사다. 모임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납북자 가족을 만나 위로하면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통일부 차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와 살포 중단 검토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대북전단 제작과 살포 과정에 참여하는 모임 내 피해 가족들과 논의해 의견을 나눠 중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