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조치 종료 뒤 범행까지 7일
‘3년 접근차단’ 연속 시행 미조치

가정폭력으로 인한 ‘임시조치’(접근금지 등)가 끝난 남편이 아내를 찾아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일주일 사이에 그의 범행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가정폭력처벌법’에는 피해자 보호 공백을 차단하기 위해 ‘임시조치’와 더불어 최장 3년간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이 엄연히 명시돼 있다.
■ 피해자, 지속된 가정폭력…접근금지 종료 후에도 신변 위협 우려
‘인천 부평구 살인 사건’의 발단은 6개월 전 아내를 상대로 한 남편의 가정폭력 사건이었다.
6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2월 17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자택에서 흉기로 아내 B씨를 위협한 특수협박 혐의로 입건됐다. 과거에도 가정폭력을 당해왔던 B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임시조치’를 신청해 달라고 요청해 다음날 이 남성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법원이 명령하는 ‘임시조치’는 주거지에서 퇴거, 피해자에 대한 접근·연락 금지 등이며 최대 6개월(1회 2개월, 2회 연장 가능)까지 적용된다.
하지만 A씨는 최장 6개월간인 ‘임시조치’가 해제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6월19일 자택 현관 앞에서 B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 일주일 사이, 접근금지 명령이 풀렸으니 집에 들어가겠다는 A씨에 대해 아내 B씨는 물론 아들 C씨도 가정폭력 재범 등 보복이 두렵다며 경찰에 수차례 도움(신고, 전화 상담 등)을 요청했다.
경찰은 “그동안 피해자의 신고 이력(지난해 12월 17일 가정폭력 사건 발생 전)이 전혀 없었던 초범 사건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임시조치를 최장 6개월간 실시했고 임시조치 종료 후 피해자에게 안전조치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권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경인일보에 밝혀왔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해명과 달리 B씨는 가정폭력 사건 당시에도 과거 남편의 폭행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까지 있다며 신변 보호를 호소한 사실이 유족을 통해 확인됐다. 또 6개월 뒤 접근금지 명령이 풀린 남편에 의해 B씨가 희생되기 전 일주일 사이에는 실제로 시행된 경찰의 보호 조치가 없었다. 이번 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오른 이유다.

■ 임시조치와 연계되는 피해자보호명령, “미리 알았더라면…”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은 가해·피해자를 즉각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법원이 ‘피해자보호명령’으로 최대 3년간 가해자에게 접근·연락 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특히 가정폭력처벌법에서는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곧바로 ‘피해자보호명령’이나 신변안전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에게 반드시 안내해야 하는 ‘고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B씨가 요청한 ‘임시조치’는 ‘피해자보호명령’ 전 피해자 보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피해자보호명령’은 피해자나 검찰이 직접 법원에 신청해야 하며, 상해진단서나 진술서 등 소명자료가 제출돼야 한다. 또 법원이 심리 기일을 정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 조사한 뒤에야 명령을 내릴 수 있어 ‘피해자보호명령’이 시행되기까지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
‘임시조치’는 ‘피해자보호명령’이나 가해자의 구속, 또는 법원의 징역형 선고 등이 있기 전에 일시적으로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말 그대로 임시적인 조치다.
그러나 B씨는 ‘임시조치’를 통해 보호받던 중 ‘피해자보호명령’을 신청하지 못했고 일주일의 공백이 발생했던 것이다. 살인 사건 전날인 18일 B씨는 “남편이 집에 찾아와 불안하다”며 경찰에 재차 신고하며, 다음날 삼산경찰서를 찾아가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 ‘피해자보호명령’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예정이었다.
유족 측은 B씨의 ‘임시조치’가 끝나기 전에 ‘피해자보호명령’이 시행됐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시조치·피해자보호명령은 피해자를 공백 없이 보호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라며 “수사기관에서 관련 제도가 연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조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선아·송윤지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