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 개항기 결성 ‘인천객주회’ 효시

1896년 설립 ‘인천항신상협회’가 전신

긴 역사 지닌 민간경제단체 시민 자부심

정부·지자체 상대로 건의 활동 ‘대표적’

창립 140주년… 지역 상공인의 대변자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 ‘두가지 바람’

市와의 거버넌스 체계적으로 강화 필요

유정복-박주봉 ‘협치 DNA’ 이어받길

청년상의 설립, 인천 경제영토 넓히는 일

역사 기록들로 미래 예측 “새 다짐하자”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조선 말 제물포 개항 직전인 1882년 개화파의 근대적 지식인 김옥균은 그의 저서 치도약론(治道略論)에서 “나라를 부강시키려면 산업 개발을 해야 하고 산업 개발을 하려면 치도(治道)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의 근대화 시작을 한마디로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한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을 알게 된 김옥균이 한성순보(漢城旬報)에 쓴 기고문에서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 과학기술이라고 서슴없이 강조한 내용을 보면 이미 조선 사회 전반에도 근대화 의지가 강하게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개항기로부터 일제강점기 인천 역시 “일제의 식민루트로 개발되었지만 근대도시의 위대한 실험실로 작동하면서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외세에 의한 일방적 근대화가 아니라 우리 자체의 근대화 욕구 속에서 그 의미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천상공회의소(이하 인천상의)는 이러한 시기에 태동했다.

올해 인천상의가 창립 140주년을 맞았다. 훈민정음이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공식 문자로 채택된 것이 130년 되었으니 140년이라는 세월은 문명이 바뀌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인천상의는 1883년 제물포 개항으로 발아(發芽)되어 1885년 결성된 인천객주회(仁川客主會)가 그 효시이고 1896년께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仁川港紳商協會)를 전신으로 볼 수 있다. 어느 한 도시에 이처럼 긴 역사를 지닌 민간 경제단체가 있다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그 존재의 당위성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선진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인천시민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천항신상협회를 오늘날 인천의 정체성인 개방성 형성 측면으로 보면 인천에서, 인천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개방형 경제 공동체의 걸작이다. 당시 전국에서 모인 객주들과 일부 관료, 그리고 사회적 명망가들까지 합류해 인천의 개방성이 보편성을 띠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인천상의가 쌓아올린 공든 탑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 활동이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한 건의 활동이다. 인천상의는 140년간 이 활동을 잠시도 멈춘 적이 없다. 광복 후 미군정 시기,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리고 산업화·민주화 과정을 거쳐 선진화 도약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의 활동이 공익성을 담보로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인천상의를 인천 경제단체의 대표자, 인천상공인들의 대변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인천시민들이 인천상의를 통해 인천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갖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천상의의 꿈은 곧 인천의 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상의 140년에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하나는 인천상의와 인천시의 거버넌스 체계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청년상공회의소(이하 인천청년상의) 설립이다.

우선 인천상의와 인천시의 거버넌스는 더욱 체계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통섭(統攝) 철학자 최진석은 “우리나라는 아직 선도국가가 아니다. 추격국가이다. 산업화·민주화 이후에 선진화를 향한 절실한 꿈의 방향이 흐려졌다. 그래서 우리가 기약 없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최태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소비하고 의존하는 나라가 될 것인지, 공급하고 선도하는 나라가 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와 기업인이 같은 생각을 다른 말로 한 것이다. 인천도 아직 선진도시가 아니다.

국내외 앞선 도시들을 추격하는 도시이다. 추격도시 인천의 미래에 필요한 것은 선진도시의 꿈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인천시 혼자 힘으로는 벅차 보인다. 인천의 20만 기업인이 합세해야 하고 이는 곧 인천상의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일을 하려면 인천상의와 인천시의 거버넌스가 공식화되어야 한다.

필자 혼자만의 식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천시가 인천상의를 정책파트너가 아니라 행정파트너로 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전자는 경제정책을 늘 함께 협의하는 협치 파트너이고, 후자는 행정적으로 필요할 때 협력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협치(協治)와 협력(協力)은 다른 말이다. 광복 후 현재까지 80년 동안 임명직과 선출직을 합쳐 인천시장은 31명, 인천상의 회장은 14명이다. 1965년 인천수출산업공업단지(부평공단)를 인천에 유치하기 위해 인천시장 윤갑로와 인천상의 회장 채호가 보여줬던 협치 DNA를 60년이 지난 이제 유정복 시장과 박주봉 회장이 이어받기를 바란다.

또 하나는 인천청년상의 설립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청년기업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공회의소가 필요하다.

기성세대 기업인과 청년기업인은 사고방식이 다르고 서로 다른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다. 1세대 기업인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집도 없는데 차부터 산다’고 걱정이지만 2~3세 경영인들은 ‘차도 없는데 어떻게 집을 사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청년기업인들을 1세대 기업인들과는 가는 길이 다른 새로운 경제 영토의 개척자로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청년상의를 설립하는 것은 인천의 경제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경제 영토는 땅만이 아니라 사람도 넓혀야 한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가 청년을 위해 시행하는 여러 정책은 지원정책이지 기회정책이 아니다. 청년기업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공유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건의하며 성취하는 회의장(chamber)이 필요하다. 지금의 상공회의소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규모 경제의 반영에는 유효하지만 세대 간 생각의 차이를 반영하는 지식경제 기반 구조로는 부족하다.

인천청년상의는 인천상의 내에 사무국을 두고 인천시와 인천상의가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청년정책과 인천상의가 운영하는 청년 프로그램들이 합류하고 청년기업인들이 AI, IoT와 사람의 관계, ESG 경영 등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청년기업인들을 위한 교육·경영 컨설팅도 그들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청년기업인들에 대한 조사·연구사업도 스스로 진행하고, 국제교류도 청년기업인들의 니즈(needs)에 맞게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급박하게 변하는 세계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청년상의 설립의 문제는 판단할 단계가 아니라 결단할 단계로 보이고 이런 것을 인천에서 먼저 추진했으면 좋겠다.

인천상의가 인천상의인 이유는 인천에 있다. 시대가 인천상의에 준 책임감과 인천시민들이 인천상의에 보내는 성원에 부응하도록 시민들과 함께하는 지역협력사업도 계획적으로 통로를 확장해야 한다. 그 길로 시민들의 기업 사랑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인천상의 140주년을 거듭 축하하며 지나온 역사의 기록을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듯이(述往事 知來者) 새로운 다짐으로 150주년을 향해 달려나가기 바란다.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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