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양반댁 도가니’ 특별한 메뉴

소 힘줄 아닌 진짜 무릎뼈 고기 제공

한우만 사용 진한 향 정오 전 만석

전골 중자 8만5천원에 4명 먹을 양

통후추·파 황금 비율 풍미 개운해

도가니탕 중자. /조용준 제공
도가니탕 중자. /조용준 제공
조용준 경제학박사·안산미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용준 경제학박사·안산미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설렁탕집에 가면 설렁탕 외에 꼬리곰탕, 도가니탕 등의 메뉴가 있다. 그런데 도가니탕 주문은 늘 망설여진다. 설렁탕집의 도가니탕은 대부분 ‘스지’탕이기 때문이다. 스지(筋)는 소의 힘줄이고, 도가니는 소 무릎의 종지뼈와 거기에 붙은 고깃덩이다.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설렁탕집들은 이를 혼재하여 사용한다. 속여 팔 목적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가니가 매우 귀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짜 도가니탕을 접하는 것은 흔치 않다. 하지만 수원 인계동의 ‘양반댁 도가니’에서는 진짜 도가니탕을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꼬릿한 냄새가 가득하다. 냄새라기보다는 향에 가깝다. 도가니를 제대로 삶았음을 증명하는 그런 향. 채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자리는 만석이다. 몇몇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이 있다. 몇 순배가 돌았을 듯 소주병이 여럿 놓인 곳도 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은 인쇄물이 아니라 직접 쓴 붓글씨이다. 상당히 명필이다. 그 상단에는 ‘한우만 사용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한우만 사용해서일까? 전골 도가니탕 중자 가격이 8만5천원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기본 반찬은 평범하다. 풋고추와 마늘, 쌈장, 깍두기, 김치, 양파 간장이다. 이중 깍두기가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맛이다. 맛있는 깍두기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은 새우젓이다. 새우젓의 젖산균과 효소는 깍두기의 발효를 촉진하여 풍미를 더한다. 겨자와 함께 종지에 담은 양파 간장은 고기 맛의 빈틈을 채운다. 겨자를 충분히 풀어도 맵지 않고 오히려 도가니 맛의 범위를 넓힌다.

도가니탕 중자는 4명이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도가니를 통으로 끓였기에 종지뼈와 고기를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기를 잘라내는 것은 손님들의 몫이다. 자른 고기를 양파 간장에 찍어서 질겅질겅 씹으면 도가니 고유의 특별한 식감을 접할 수 있다. 질기지도 않고 물컹하지도 않아서 혀로 씹는 느낌이 있다. 도가니의 오묘한 식감을 압도하는 것은 국물이다. 국물의 색깔은 유명 설렁탕집과 유사하다. 식탁 위에 후추와 파는 없다. 주방에서 통후추와 파를 황금비율로 배합하여 나오기 때문이다. 통후추는 설렁탕류 음식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이 집과 마포에 있는 ‘마포옥’ 정도가 통후추를 사용한다.

후추는 고기의 보존 기간을 늘리고 누린내를 제거한다. 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유럽인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후추의 생산지는 아시아였다. 그래서 후추를 쟁취하기 위한 신항로 개척 경쟁이 치열했다. 이를 ‘후추 전쟁’이라고 부른다. 후추 전쟁의 과열 양상에 결국 교황(알렉산데르 6세)이 중재에 나서 ‘교황 자오선’을 설정했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것은 교황 자오선의 결과물이다. 후추는 세계사에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진짜 도가니를 사용하는 이 집의 도가니탕은 매우 특별하다. 한 술 뜨면 속이 개운해지며 한우 무릎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시판 소주와 아주 궁합이 좋다. 아마 술꾼들은 이곳을 성지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술꾼이 아니어도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양반댁 도가니는 양반처럼 “에헴” 하고 들어갔다가 술에 취해 도가니를 땅에 대고 기어 나올만한 곳이다.

/조용준 경제학박사·안산미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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